[공부가 쉬워지는 한국사 첫걸음] 1400년 태종, 방원, 왕위에 오르다
왕권 강화하고 여러 제도 정비… 나라의 기틀을 다지다
‘왕이 강력한 힘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질서가 바로 서고 신하들이 횡포를 부릴 수 없으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되기 전부터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어. 신하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도전의 생각과는 정반대였지. 그러니 정도전과 이방원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세력 다툼을 벌였던 거야.

태종은 제일 먼저 신하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고 있던 사병을 없애서 군사권을 장악했어. 이에 반대한 신하들은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지. 사돈이건 공신이건 봐주지 않았어. 심지어 세자의 편에 서서 세력을 키우려고 했던 네 명의 처남들을 귀양 보낸 뒤 죽이기도 했어.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모두 없애고 후대에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조선을 만들리라.’

태종은 형제간에 피를 흘리고 외척들을 제거하며 왕위를 차지하고 지킨 무서운 왕이었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제도를 정비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은 왕이기도 해. 태종은 호패법과 양전 사업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호패법은 열여섯 살 이상의 남자에게 호패라는 신분증을 차고 다니게 한 것이야. 호패는 오늘날의 주민등록증

같은 거지. 호패를 통해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조사해서 군역을 담당하게 하고 세금을 걷으니 나라의 살림은 점점 탄탄해졌단다. 양전 사업은 전국의 토지를 조사해서 땅의 경계와 소유를 정확하게 밝히는 거야. 그래야 백성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거둬들여 나라 살림을 늘릴 수 있으니까. 태종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어.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여러 제도를 정비해서 나라가 안정되게 한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 덕분에 후대에 조선의 문화가 활짝 피어나게 됐거든.

6조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어요

조선은 어떻게 나랏일을 결정하고 운영했을까? 우선 의정부를 나랏일을 결정하는 최고 기관으로 삼았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렇게 3정승이 의정부의 우두머리였지. 그리고 6조가 있었어.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맡아보던 6개의 중앙 관청이야. 이조ㆍ호조ㆍ예조ㆍ병조ㆍ형조ㆍ공조를 말해.

의정부의 3정승이 나랏일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6조 판서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겼단다. 6조의 판서들이 저마다 맡은 업무에서 결정이 필요한 문제가 생기면 의정부의 정승들에게 올렸어. 그러면 정승들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 보고 임금에게 보고했지. 임금은 정승들과 의논하여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어. 그후 의정부는 임금이 내린 명령을 다시 6조로 보내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단다.

간단히 말하면 6조의 업무는 의정부를 통해 임금에게 올라가서 결정이 이루어진 거야. 그런데 태종은 이 제도에 불만이 많았어.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하면 정승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왕권이 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결국 태종은 왕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의정부 서사제를 고치기로 마음먹고 명령을 내렸어.

“지금부터 6조의 판서들은 나랏일을 의정부를 거치지 말고 임금인 내게 직접 말하고 처리하여라.” 이후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나랏일을 직접 임금에게 보고하고, 임금이 명령하게 됐어. 의정부의 역할을 줄여 버

린 거지. 이것은 6조에서 직접 임금에게 의견을 올린다 하여 ‘6조 직계제’라고 해. 이렇게 제도를 바꿈으로써 태종은 정승들의 힘은 약하게, 왕의 힘은 강하게 되도록 만들었단다.

/자료 제공: ‘공부가 쉬워지는 한국사 첫걸음-조선이 들어서다’(좋은책어린이)

■ 용어 비타민


공신: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신하를 말해.
처남: 아내의 남자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야. 태종은 왕비인 원경 왕후 민씨의 남동생들을 죽였어.
외척: 외할아버지, 외삼촌 등 어머니 쪽의 친척이야.
정승: 신하들 중에 가장 높은 벼슬로, 품계는 정1품이야.
판서: 6조의 으뜸 벼슬로 품계는 정2품이야.
직계: 윗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올리는 것을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