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위인 찾기] 울산
울산의 역사

울산도 대구와 마찬가지로,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도시입니다. 삼국 시대에 울산은 신라의 땅이었어요.

울산이라는 지금의 이름이 생긴 것은 조선 시대인 1413년입니다. 그 전까지는 ‘울주’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울산은 우리나라가 공업으로 경제 성장을 시작한 1960년대 이후 발전하였어요. 현재도 많은 기업과 공장이 있는 한국의 대표 산업 도시랍니다. 1962년에 특정 공업 지구로 결정되었고, 1997년에 울산광역시가 되었어요.


‘한글이 목숨’이라고 생각한 국어학자

최현배 근현대 ㅣ 1894 ~ 1970 ㅣ 국어학자, 교육자

인물 소개

1894년 10월 19일 울산에서 태어났어요. 고등학생 때 최현배는 국어학자였던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에서 한글을 배웠어요.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최현배는 대학교수가 되었어요. 그리고 평생 우리말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우리말에 관련된 책을 펴냈어요.

최현배는 뭘 했을까?

탄압에 맞서 꿋꿋하게 한 한글 운동


일본은 1910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후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어를 배우도록 했어요. 일본어를 가르쳐 조선 사람을 일본에 복종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에게 한글을 널리 보급하는 한글 운동은 눈엣가시 같은 것이었답니다. 주시경은 1908년 국어 연구 학회라는 한글 연구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 모임은 1921년 조선어 연구회라는 모임으로 발전하였고, 1931년에 조선어 학회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최현배는 조선어 학회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답니다. 조선어 학회는 한글에 대한 발표회, 강연회를 통해 한글 보급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또 국어학자를 기르는 일도 하였답니다.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체포됨

최현배는 일본의 탄압으로 시련을 당하기도 했어요. 대표적인 것이 일본이 꾸며 낸 ‘조선어 학회 사건’입니다. 1938년 일본은 모든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국어 과목으로 정했어요. 그런데 조선어 학회가 한글 보급 운동을 계속하자 1942년부터 조선어 학회 회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은 고문까지 하면서 국어학자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했어요. 그러나 최현배 등의 학자들은 일본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한글 운동에 헌신함

한글 운동에서 최현배는 큰 발자취를 남겼답니다. 대표적인 업적에는 한글 사전 만들기, 한글 맞춤법 만들기, 표준말 정하기 등이 있습니다. 또 최현배는 한글에 관한 많은 책을 썼어요. 《글자의 혁명》, 《한글의 투쟁》, 《한글 가로글씨 독본》 등의 책을 쓴 것입니다. 그는 외래어 사용하지 않기 운동도 하였어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일본어 등 외래어 사용을 하지 말자는 운동이었답니다.

훌륭한 교육자

최현배는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어요. 그는 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라 사랑의 길》, 《나라 건지는 교육》 같은 책을 썼습니다. 1970년 최현배가 죽은 후, 그의 후배 학자들은 최현배의 뜻을 이어받아 활발하게 활동하였어요. 최현배가 이끈 조선어 학회는 1949년 한글 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단체는 지금도 우리말과 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최현배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최현배가 죽은 후 그의 호(본명 외에 편하게 부르려고 지은 이름)를 따서 ‘외솔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자료 제공=‘알려줘 대구ㆍ울산 위인!’(김은빈 글, 윤정미ㆍ조윤주 그림, 지학사아르볼)

한글 연구와 한글 교육의 개척자 주시경

주시경 (1876~1914) 국어학자나는 1876년에 태어났어. 내가 한글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렸을 때 한학을 배우면서야. 한학을 공부하려면 한자를 많이 알아야 했어.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 문자인 한글이 있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를 공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한글 연구를 결심하게 되었지. 내가 처음 한 한글 운동은 한글로 된 신문을 만드는 것이었어. 사람들이 한글 신문을 읽다 보면 자연히 한글을 익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1896년 서재필이라는 독립운동가가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단다.

일제 감정기 때 나는 한글 교육도 열심히 하였단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서울 시내에 있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어. 최현배도 그때 내가 가르친 제자야.

★주시경은 과로로 서른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사람들은 그를 우리나라 한글 연구와 한글 교육의 개척자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울산의 ‘한글 문화 예술제’

국어학자 최현배를 배출한 울산에서는 해마다 한글날을 기념해 ‘한글 문화 예술제’라는 축제가 열려요. 이 행사에선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요. ‘대한민국 멋 글씨 공모전’, ‘세계 문자 전시회’, ‘한글 과거 시험’, ‘한글 사랑 음악회’, ‘한글 사랑 거리행진’ 등의 행사가 열린답니다.

인터넷에서 ‘한글 문화 예술제’를 검색하여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한글날은 어떻게 생겼나요?

한글날의 기원은 1926년 조선어 연구회가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행사를 거행한 것입니다. 가갸날은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2년에는 양력 10월 29일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에 한글이 탄생한 날짜가 있어, 1945년부터는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하였어요. 또 2005년부터 한글날은 국경일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