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의 숨은 그림 찾기] 중명전
'을씨년스럽다'. 하늘이 비 올 듯 흐리고 어둑할 때 쓰는 표현이지요. 원래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에서 유래했어요. 여기서 을사년이란 1905년을 가리켜요. 대체 1905년. 을사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표현이 생긴걸까요? 이번에는 이 표현과 관련 있는 장소를 찾아갈 거에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나와 아래로 내려가다 건너편 정동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요. 골목 안쪽에 빨간 벽돌 건물인 중명전이 보일 거예요.

중명전은 다른 건물들과 떨어져 마치 섬처럼 놓여 있네요. 하지만 원래는 덕수궁 안에 있던 궁궐 건물이었답니다. 이 건물을 포함한 주변 지역이 전부 덕수궁 영역이었거든요. 1905년 을사년의 비극이 이곳에서 일어납니다. 바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거죠. 을사늑약은 우리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외교권을 넘긴다는 게 무슨 뜻이나고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협상할 때,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이죠. 사실상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 거예요.

중명전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실내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는 게 가장 눈에 띄지요. 유리 아래로 독특한 무늬의 타일이 보일 거예요.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바닥 타일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를 깔아 둔 거죠.

최근에 미국에서 고종의 사진 한 장이 발견되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어요. 사진은 한 미국인이 대한제국을 방문했을 때 고종에게 선물로 받았던 것으로 추정해요. 사진 속 바닥 문양이 낯설지 않죠? 바로 지금 남아있는 중명전 바닥타일 문양과 같아요, 그렇다면 이 사진은 고종이 중명전에 머물던 시기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중명전 복도 바닥에 카펫을 깔고 병풍을 친 뒤에 사진을 찍었나 봐요.

중명전 내부에는 을사늑약 체결과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어요.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은 여러모로 부당한 일이었죠.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대신들을 위협하며 조약 체결을 강요했어요. 이때 몇몇 대신이 도장을 찍기도 했죠. 하지만 고종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 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멀리 헤이그 국제회의에 특사를 파견했죠.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드는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잊고 싶은 역사의 현장인데, 왜 이곳 중명전을 보존하느냐고 말이죠. 맞아요. 분명 중명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조약이 체결된 역사의 현장이에요. 이처럼 지워 버리고 싶은 과거의 흔적이 담긴 문화재를 '네거티브 문화재'라고 해요. 이런 것들은 철거하자는 주장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남겨 두는 건 '기념'이 아니라 '기억'하자는 뜻이에요. 이곳에는 목숨을 걸고 을사늑약 체결에 동의하지 않은 대신들, 또 끝까지 거부하고 무효화하려고 노력했던 고종의 흔적도 남아 있죠. 그러니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소로 남겨 후손들도 그 현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거예요.

/자료 제공='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안민영 글·임근선 그림·책과함께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