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위인찾기]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을 벌인 제주 해녀들

해녀 소개

산소통 없이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 캐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이에요. 그래서 바다 해(海) 여자 녀(女)를 써서 해녀라고 부르지요. 우리나라 역사에 해녀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시대예요. 제주도는 예로부터 해녀가 가장 많은 곳이랍니다. 오늘날에도 제주도에 가면 열심히 일하는 해녀들을 볼 수 있어요.

해녀들의 용감한 싸움

□ 여성이 중심인 항일 운동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뤄 내려는 운동이 많이 일어났어요. 또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도 많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운동은 남성이 중심이 되어서 일으켰어요. 그와 달리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들이 중심이었던 아주 큰 항일 운동이었어요.

□ 체포도 겁내지 않은 해녀들

해녀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경찰들이 나섰어요. 하지만 워낙 많은 해녀가 항일 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찰이 부족할 정도였지요. 그러자 전라남도에 있던 경찰들까지 와서 해녀들의 항일 운동을 막으려고 했어요. 일본 경찰은 1932년 1월 23일부터 1월 27일까지 34명의 해녀와, 해녀들을 도운 제주 주민들을 체포했어요. 체포된 해녀들은 감옥에서도 ‘우리는 일본에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이다!’라며 당당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답니다.

□ 바다에서 항일 운동을 한 우도 해녀들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 처음 일어난 구좌읍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우도라는 섬이 있어요. 우도의 해녀들도 1932년 해녀 항일 운동에 참여하였어요. 일본 경찰은 항일 운동 주동자를 잡으러 배를 타고 우도로 왔어요. 이때 우도 해녀들은 바다에서 일본 경찰이 탄 배를 에워싸고 시위를 벌였지요. 오늘날 우도의 천진항에는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답니다.

TIP 해녀의 노래

제주의 독립운동가로 강관순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관순은 학교 졸업 후 선생님이 되었지요. 강관순은 해녀 항일 운동이 벌어졌을 때 해녀들을 돕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어요. 평소 글을 잘 썼던 강관순은 감옥에서 〈해녀의 노래〉라는 시를 지었어요. 이 시는 나중에 노래로도 만들어져, 일제 강점기 때 해녀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답니다.

<자랑스러운 제주 해녀>

□ 예로부터 부지런했던 제주 해녀

해녀들은 보통 어릴 때 수영을 배우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해녀가 되어 해산물을 캐러 다녔어요. 오늘날 제주에는 해녀 학교가 있어 어리지 않아도 해녀에 도전할 수 있어요. 일을 그만두는 나이는 사람마다 다른데, 건강하기만 하면 예순 살까지도 일할 수 있어요. 조선 시대에 제주 해녀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또 제주 해녀들의 활동 덕분에 많

은 육지 사람들도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었지요.

□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제주 해녀 문화

2016년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제주 해녀 문화를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정했어요. 제주 해녀 문화의 역사성과 고유한 가치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거지요. 인류 무형 문화유산에 오른 제주 해녀 문화는 3가지예요. ‘물질’, ‘잠수굿’, ‘해녀 노래’지요. 물질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캐내는 것을 말해요. 제주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잠수굿은 해녀들의 안전과 풍요를 비는 의식이에요. 해녀 노래는 제주 해녀들이 바다에 일하러 나가며 부르는 노래랍니다.

/자료 제공=‘알려줘 제주 위인!’(김은빈 글ㆍ이경석 외 그림ㆍ지학사아르볼 펴냄)

해녀 항일 운동 기념 공원

□ 제주 해녀 항일 운동 기념 공원(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공원에는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을 기념하는 탑과 해녀 광장, 〈해녀의 노래〉 시비가 있어요. 기념 공원 둘레에는 팽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이것은 제주 해녀들의 강한 정신을 나타내지요.

□ 해녀 박물관

기념 공원 안에 있어요. 해녀들이 해산물을 캘 때 사용하는 도구 등 다양한 자료를 구경할 수 있어요. 또 제주 해녀 항일 운동에 대한 기록도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