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역사 이야기] 만덕로
-전 재산을 내놓아 제주 백성을 살렸어요!

김만덕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니?

김만덕은 조선 시대에 굶어 죽어가는 제주의 백성들을 살려 낸 큰 상인이야. 여자는 사회 활동은커녕 제주를 떠나 육지로 나가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던 그 시절에 장사로 돈을 벌고, 그 돈을 전부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위해 내놓았지. ‘만덕(萬德)’이란 이름처럼 만 사람에게 덕을 베풀었던 거야. 김만덕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

조선 정조 임금 때 일이야. 가을 추수를 앞두고 제주도에 커다란 재난이 닥쳤어. 바로 태풍이 몰아닥친 거야.

수확을 앞두고 있던 농작물은 순식간에 물에 잠겨 버렸지. 제주 백성들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어. 지난 몇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되어 굶기를 밥 먹듯이 했는데, 또다시 태풍으로 농작물이 사라졌으니 말이야.

예부터 제주의 땅은 참으로 척박했어.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데다 물이 부족해서 벼농사를 짓기 어려웠지. 제때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나 콩 같은 밭농사도 쉽지 않았어. 사람이 살 만한 섬이 아니었던 제주는 주로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이 귀양을 오는 혹독한 섬이었어. 이러니 관리들도 제주도 발령을 꺼렸어. 먹고살기가 힘드니 살길을 찾아 제주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그러자 나라에서는 제주도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될까 염려해서 ‘제주 출륙 금지령’을 내렸어. 여자는 아예 육지로 나갈 수 없고, 남자들도 관의 허락을 받아야만 섬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 추운 겨울이 닥치자 남은 양식마저 떨어져 굶주림은 더욱 심해졌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 제주 목사는 임금께 상소를 올렸어.

상소문을 읽은 정조 임금이 대신들을 불러 놓고 의견을 물은 다음 전라도 관찰사에게 돈 만 냥을 내려 보냈어.

“해남, 강진, 보성, 진도 등에서 곡식을 바꿔 제주로 보내라!”

전라도 관찰사는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배 열두 척에 곡식 만천 석을 실어 제주로 보냈어. 그러나 바다는 그 뱃길마저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어. 곡식을 실은 배가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난 거야. 다섯 척의 배와 함께 곡식 2천 석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어. 제주 백성들은 희망을 잃고 말았어. 그때, 제주 백성들을 구할 구세주가 나타났어. 제주로 들어가는 길목, 건입포에서 객주를 운영하고 있던 큰 상인 김만덕이었지.

김만덕은 함께 일하던 사람에게 천금을 선뜻 내놓으며 말했어.

“이 돈은 제가 모은 전 재산입니다. 육지로 나가서 이 돈으로 식량을 사 오십시오.”

김만덕은 포구에 나와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봤어.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만덕이 열한 살에 해남으로 장사를 떠났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돌아오지 못했어. 그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큰 병을 얻어 1년 뒤에 죽고 말았지.

열두 살에 고아가 된 만덕은 먹고살 길이 없어 기생집으로 들어갔어. 성인이 되자 관에 호소하여 원래 신분을 되찾았지. 그리고 건입동에 객주를 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사를 시작했어. 장사는 참으로 어려웠어. 대부분은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았어. 김만덕은 그런 일에 개의치 않았어.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 좋은 물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었어. 시간이 흐르자 제주에서 물건을 믿고 살 만한 곳은 ‘김만덕 객주’라는 소문이 돌았고, 객주는 날로 번창했어. 며칠 뒤에 육지로 떠났던 배가 곡식 500석을 싣고 돌아왔어. 만덕은 그중 50석을 가까운 친척과 이웃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는 관아로 보냈어.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정조 임금은 크게 칭찬하면서 제주 목사에게 만덕의 소원을 물어보라 일렀어. 만덕의 대답은 이랬어.

“서울에 올라가서 임금님이 계시는 궁궐을 우러러 보고, 금강산 만이천봉을 구경하는 것이옵니다.” 정조 임금은 만덕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었어. 그렇게 하여 만덕은 제주 여인으로는 처음으로 바다를 건너 서울 땅을 밟았어. 정조 임금은 만덕에게 ‘의녀 반수’라는 벼슬을 내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

봄이 되자, 만덕은 금강산에 올랐어.

“아,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제주로 내려가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여생을 보내야겠다.” 다시 제주로 돌아온 만덕은 장사를 계속했고, 여전히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나눔을 실천했어. 제주 사람들은 이런 만덕을 사랑하고 존경했지. 제주 건입동의 ‘만덕로’는 그런 김만덕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 가고 싶은 제주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단다. /자료 제공= ‘길에서 만나는 인물 이야기’(김은의 글ㆍ김영화 그림ㆍ키즈엠 펴냄)

길 따라 인물 따라

이 쌀은 굶어 죽는 백성들을 위한 양식이오!

제주 백성을 살린 만덕 이야기

김만덕(1739~1812)은 제주 백성으로서는 조선 최초로 임금을 만난 평민 여성이었어. 김만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정조 20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어. 제주 기생 만덕이 재물을 풀어서 굶주리는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였다.-「정조실록」 1796년 11월 25일

조선 시대 제주는 사람이 살기 힘든 유배의 땅

화산암이 만들어 낸 천혜의 땅 제주. 오늘날에는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먹고살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어. 태풍,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아 해마다 농사를 망쳐 버렸거든. 이렇듯 사람이 살기 힘든 제주는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들을 귀양 보내는 유배의 땅이었어.

계속된 흉년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제주

정조 16년(1792)부터 4년간 제주는 최악의 흉년을 맞이했어. 해마다 수천여 명의 사람이 굶어 죽을 정도였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활도 처참하기 그지없었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자식을 내다 버리고, 심지어는 시체를 먹는 일까지 벌어졌어. 제주 목사는 제주의 상황을 알리고 백성을 구하려고 구휼미 2만 섬을 요청했어.

구휼미를 실은 배마저도 침몰하고

다음 해 2월, 구휼미 만여 섬을 실은 배 열 두 척이 전라남도 영암을 출발했어. 제주 백성들은 배가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 그런데 그 배마저도 폭풍을 만나 열두 척 가운데 다섯 척이 침몰하고 말았어. 제주는 살아갈 희망을 잃었어. 당시 제주도민 3분의 1이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니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하겠지?

우리를 살려 준 이는 만덕!

이때 만덕은 수십 년 동안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제주 백성을 위해 다 내놓았어. 그 돈으로 전라, 경상 등 육지에서 쌀을 구해다가 관아로 들여보냈지. 이 이야기를 들은 정조 임금은 만덕의 소원인 금강산 유람을 시켜 주었어. 그 당시 금강산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