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인물 이야기] 목화씨를 가져와 의류 혁명을 일으켰어요!
상상해 보렴. 추운 겨울,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옷을 입고 있다면? 그와 반대로 솜이 누벼진 두툼한 옷을 입었다면? 고려 말의 학자였던 문익점은 백성들이 입는 옷에 관심을 갖고 사신으로 갔던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퍼뜨렸어. 목화는 ‘면’ 또는 ‘무명’이라는 옷감과 솜이불이 되어 추위에 떨던 백성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지.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에 의류 혁명을 일으킨 문익점, 그 이야기를 들어 볼까?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일이야.

경상북도 산청군 지리산 언저리에 문익점이라는 사람이 살았어.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늘 책을 가까이했어.

어느 해 농사일을 마친 문익점은 나라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났어. 그가 찾아간 스승은 학식이 높기로 유명한 이곡이라는 학자였지. 문익점은 이곡의 아들 이색, 정몽주와 함께 글을 배웠어. 문익점의 학문은 날로 높아져서 중국 원나라에서 실시하는 과거 시험에 합격했어.

이후 문익점은 사신이 되어 중국 원나라에 갔어. 그곳에 머물고 있던 문익점은 마음이 복잡했어.

“내가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둔 것은…….”

문익점의 생각은 어느새 농사를 지으면서 책을 읽던 시절로 돌아갔어. 그는 눈을 들어 들판을 바라봤어. 가을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었지.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금방 추운 겨울이 닥칠 텐데…….”

문익점은 고향 생각을 하며 손차양(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이마에 손을 댐. 또는 그때의 손 모양)을 만들어 먼 곳을 바라봤어. 그때 저 멀리 흰 눈이 소복이 내린 것처럼 새하얀 밭이 보였어. 문익점은 목화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목화 재배 기술은 극비에 부쳤어. 목화로 만든 옷감을 높은 값에 팔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지. 문익점은 발걸음을 재촉했어.

“목화씨 몇 개만 가져가는 거야. 그러면 고려 사람들도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어.”

문익점은 그곳에서 목화 몇 송이를 주머니에 넣고 나왔어.

“자, 이제 고려로 가는 거야. 지금 내가 할 일은 이 목화씨를 퍼뜨리는 거야.”

문익점은 오직 목화만을 생각하며 고려로 돌아왔어.

“이제 목화씨를 심어 가꾸는 일만 남았구나.”

그러나 목화씨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문익점은 농사에 대해 잘 아는 장인 정천익을 찾아갔어.

그러고는 품속에서 목화씨를 꺼냈어.

“이 귀한 것을……. 혹시 모르니 나눠 심어 보세나.”

그렇게 하여 목화씨를 각자의 밭에 나누어 심었어. 문익점은 싹이 트나 안 트나 날마다 보살피며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올라오지 않았어. 실망한 문익점은 장인을 찾아갔어.

“겨우 하나가 싹을 틔웠다네.”

정천익의 말에 문익점은 눈물이 글썽해서 하늘을 보았어. 가을이 되자 마침내 한 송이의 목화가 피었지. 문익점은 여기에서 씨를 받아 다음 해에 다시 심었어. 3년 만에 산청 마을 들판은 하얀 목화로 뒤덮였어.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었어. 목화에서 어떻게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지 그 방법을 알 길이 없었던 거야.

그러던 어느 가을날이었어. 웬 스님이 목화밭을 지나다가 말했어.

“고향에서 본 목화를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정천익은 스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들었어. 그건 스님이 원나라에서 왔다는 뜻이고, 또 목화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어. 정천익은 정중하게 스님을 집으로 모셨어.

스님은 활로 씨앗을 가리는 방법과 솜 만드는 법, 목화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어. 그것을 토대로 문익점의 손자 문래는 실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보급했어. 그래서 기계의 이름을 손자 이름 그대로 ‘문래’라고 했는데, 훗날 ‘물레’가 되었어. 또 손자는 목화에서 뽑은 실로 맨 처음 베를 짰어. 사람들은 그 베를 ‘문영이 짠 베’라는 뜻으로 ‘문영 베’라고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명베’가 되었어.

경상남도 산청은 문익점의 고향이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한 곳이야. 산청에서는 사람들을 추위로부터 구해 준 문익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문익점로’라는 길 이름을 만들어 기리고 있단다.

/자료 제공= ‘길에서 만나는 인물 이야기’(김은의 글ㆍ김영화 그림ㆍ키즈엠 펴냄)

헐벗은 사람들을 생각하다!

모두가 따뜻한 세상을 꿈꾼 문익점 이야기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기 전 고려 사람들은 삼베나 모시, 비단, 가죽 등으로 옷을 지어 입었어. 그중 비단옷

이나 가죽옷은 가격이 비싸고 귀해서 부자나 귀족들이 입었어. 일반 백성들은 삼베옷이나 모시옷을 사계절 내

내 입었지. 문익점은 고려의 백성들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솜옷을 입을 수 있게 해 주었단다.

목화솜이 목면이 되기까지

①수확과 건조: 목화솜을 따서 햇볕에 잘 말린다.

②씨아기 작업: 말린 목화솜을 씨아기에 넣어 씨를 빼낸다.

③활 타기: 대나무를 휘어서 만든 활로 솜을 털어 부풀린다.

④고치 말기: 부드럽게 부풀린 솜을 손으로 비비면서 길고 둥글게 말아 고치를 만든다.

⑤실뽑기: 물레질을 해서 고치에서 실을 뽑아낸다.

⑥무명 날기: 물레질로 뽑아낸 실들을 길이가 일정하게 가지런히 골라 모은다.

⑦베 매기: 실에 풀을 먹이고 도투마리에 감는다.

⑧베 짜기: 도투마리를 베틀에 올려놓고 옷감을 짠다.

⑨옷 만들기: 옷감을 잘라 원하는 옷을 만든다.

목면, 백성들의 옷감으로 자리 잡다

목면은 삼베만큼 값이 싸면서도 비단만큼 품질이 좋은 옷감이야. 그래서 문익점이 목화 재배에 성공한 지 30년 만에 백성들의 옷감으로 자리를 잡았지. 1401년, 조선 태종 임금 때부터는 모두 목면으로 된 옷을 입었단다.

목면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

목면은 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바꾸었어. 가장 큰 변화는 건강과 위생, 의료 분야였지. 목면은 땀과 수분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속옷과 수건에 적합했어. 또 부드러운 목화솜과 목면으로 만든 붕대는 환자들의 피를 멎게하는 데 사용했지. 목면으로는 그물, 등잔불, 화약의 심지도 만들었어. 목면이 널리 보급되자, 나라에서는 쌀 대신 목면으로 세금을 내게 해 주어 가난한 농민들의 숨통을 틔워 주었어.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가 백성의 옷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고, 농민들의 살림살이까지 나아지게 만들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