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이야기]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내가 여기 다녀갔노라!

북한산 알아? 서울의 북쪽에 있는 높은 산인데 바위 봉우리가 많아서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도 많고, 평일이고 휴일이고 답답한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다 받아 주는 고마운 산이지. 이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 ‘비봉’이라고 있어. 한자로 쓰면 ‘돌기둥 비(碑) + 봉우리 봉(峰)’이지. 돌기둥 봉우리? 재미있는 이름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비봉 꼭대기에 비석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거야.

조선 시대가 될 때까지 그 비석을 누가, 언제, 왜 세웠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대. 직접 가서 조사할 것이지 그걸 뭐 추측만 하고 있었나 싶지?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산 한 번 오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 금강산 구경이 평생 꿈이던 시절이니까.

그러다 드디어 궁금한 걸 못 참은 이가 나타났어. 바로 조선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였지. 추사 선생은 옛 글을 보고 누가, 언제, 왜 썼는지 밝히는 데 탁월한 분이셨어. 글씨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분이니 비석에도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야. 1816년 추사 선생이 비석의 정체를 밝히려고 드디어 산을 올랐어. 다른 사람을 시켜 탁본을 떠오라고 했어도 될 텐데 그러지 않고 직접 말이야. 추사 선생은 비봉에 올라 비석을 한참 살폈어. 그러더니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지!

“이건 진흥왕이 세운 비석이다!”

진흥왕이라고? 아니, 그렇다면 이 비석은 조선을 거슬러, 고려를 거슬러, 통일신라 시대를 거슬러,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는 오래된 비석이라는 거? 삼국 시대 세 나라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백제는 근초고왕,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신라는 진흥황! 하던 바로 그 진흥왕?

사실 진흥왕이 세운 비석이라는 걸 맨 처음 안 사람은 조선 시대 실학자 서유구였어. ‘진흥왕 순수비’라는 이름도 서유구가 지은 거고. 하지만 서유구는 겨우 10여 자를 판독한 데 그쳤고, 본격적인 연구는 김정희가 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 다만, 서유구가 이미 밝혀냈다는 걸 김정희가 알고 비봉에 갔는지, 모르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서유구가 알면 참 억울할 일일 것 같아. 그건 그렇고, 도대체 진흥왕은 왜 이런 산꼭대기에 비석을 세운 걸까?

진흥왕은 신라의 영토를 사방으로 넓힌 왕이야. 지금의 경상남북도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신라가 점점 영토를 넓혀 나가더니 북쪽으로 함경도 일부, 서쪽으로 한강 유역까지 차지했지. 진흥왕은 새로 정복한 영토를 두루 돌아 다니면서(그걸 ‘순수(巡狩)’라고 해.) 기념으로 곳곳에 비석들을 세웠어.

“내가 다녀갔노라!”

“여기는 우리 땅!”

이런 내용으로 말이야. 우리는 이 순수비들이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를 보고서 진흥왕이 차지한 땅이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있어.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도 그중 하나인 거고. 일종의 국경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보고 싶지? 하지만 그곳에 있는 건 복제품이야. 진짜 진흥왕 순수비는 보존을 위해 197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해 왔거든. 국립중앙박물관 선사ㆍ고고관의 신라실에 가면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차지한 땅마다 다니면서 자기 땅이라고 비석을 세운 진흥왕을 떠올려 보니 좀 우습기도 하다. 산책 나갈 때마다 영역 표시한다고 나무마다, 전봇대마다 실례하는 강아지 생각이 나서 말이야. 앗! 내가 진흥왕께 좀 너무했나? 아무튼 영토를 넓혀 나가는 데 성공한 왕의 흡족한 표정이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아. 기회가 되면 박물관에서 꼭 한번 찾아보렴.

/자료 제공= ‘알고 봐도 재미있고 모르고 봐도 흥미로운 우리 유물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