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크는 인문학] 성평등
여성과 남성, 더 자유로운 진화를 위해 우리는 태어나면서 여자 또는 남자라는 성별로 구별되고 자랍니다. 즉,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 차이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남과 여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부터 제3의 성이 있어 왔으니까요. 요즘은 남성이 임신하고 아기를 낳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 200여 년은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싸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의 차별은 남아 있습니다. 여성은 외모로 평가받고, 집안 일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여겨집니다. 그럼, 남성들은 편하기만 할까요? 여성과 남성이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 함께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합니다. ‘생각이 크는 인문학 12-성평등’을 읽으면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세계 최초로 출산에 성공한 남성

세계 최초로 임신한 남성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현대 과학의 능력으로도 남성이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성에게는 자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남성이 임신을 했을까요? 미국에 사는 토마스 비티는 부인이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임신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결심만으로 임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실 토마스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02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호르몬 치료도 받고 있었지요. 이때 이름도 트레이시에서 토마스로 바꿨습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새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남성이 된 토마스는 이후 현재의 아내 낸시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5년간 결혼 생활을 해 온 토마스는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아내를 대신해 임신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성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지만 언젠가 아기를 낳고 싶을지도 몰라 자궁은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토마스 부부는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자연분만으로 첫째 딸을 무사히 낳고, 둘째는 아들, 그리고 셋째로 딸을 낳았지요. 토마스 비티는 한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성이나 남성으로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욕구이다. 나는 사람이고, 나는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다.”

토마스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아이들의 ‘아빠’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운동의 제2물결, 68혁명

68혁명은 미국의 베트남전 파병 반대 운동으로 시작됐습니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독립했지만, 북부와 남부로 갈라졌지요. 미국은 독재자가 지배하던 남베트남을 지원했고, 공산주의 체제였던 북베트남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1968년, 젊은이들은 명분 없는 국가의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미국의 반전평화운동은 유럽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베트남의 호치민(1890~1969)과 쿠바의 체 게바라(1928~1967)와 같은 혁명가를 존경했지요. 존 레논과 같은 대중가수와 젊은이들은 전쟁 대신 사랑을 노래하며 문화의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학생과 시민들의 압력으로 결국 미국은 1972년 베트남에서 철수했고 당시 진보적 운동의 요구는 현재 유럽사회의 기초가 됐습니다.

68혁명은 여성운동이 새롭게 부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상황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에 잘 나타납니다. 개인의 문제로 보았던 ‘사랑과 성, 성 정체성, 성폭력 등’이 여성인권 문제로 등장한 것이지요. 여성노동자들은 남성과 같은 임금을 요구했고 정치와 사회에서도 여성할당제를 요구했지요. 여성들 안에서의 차이, 인종과 계급, 성소수자 등의 문제가 중요하게 이야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성춘향과 이몽룡은 청소년?

고전 ‘춘향전’의 춘향이와 이몽룡은 이팔청춘에 사랑을 나누었어요. 지금으로 보면 열여섯 살입니다. 서양의 대표 커플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떤가요? 줄리엣은 열네 살 생일을 앞두고 로미오를 만났지요.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라이히(1897~1957)는 정신의학자이자, 최초의 성 과학자입니다. 빌헬름은 성해방이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덜 억압한다는 것이지요. 또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성을 경험하는 사람은 약탈과 억압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의 사상은 친구인 알렉산더 닐(1883~1973)이 세운 서머힐(영국) 학교에 잘 드러납니다. 유럽의 청소년들은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는 하지만 68혁명 이전에는 유럽 청소년들도 지금 같지는 않았습니다. 서머힐 학교는 예외적인 곳이 었지요. 68혁명 당시 학생들은 학교의 권위적인 구조에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학생 의견을 대신한 검열제도에 반대하고 정치적 권리도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68혁명은 전쟁보다 사랑을 외쳤지요. 68혁명에서는 청소년도 자유로운 사랑과 성의 주체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은 어떤가요? 너무나 많은 학습시간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도, 사랑할 시간도 없지요. 고정된 수입이 없는 청소년에게 사랑과 데이트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이 모여 성에 대해서 공부하고,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선언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cafe.naver.com/youthsexualright)은 선언문에 이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청소년이 성적 권리를 누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남을 억압하지 않는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될까요, 아니면 성적으로 문란해진 사회가 될까요? /자료 제공=‘생각이 크는 인문학 12-성평등’(김보영 글ㆍ이진아 그림ㆍ을파소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