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발전소 찌릿찌릿 문화재] 도산서원에 퇴계 이황의 위패가 있는 이유는?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조선 시대 유학 교육의 중심이 된 ‘도산서원’

양반 마을로 유명한 경상북도 안동에는 조선 시대 유학 교육의 중심이 되었던 도산서원이 있어. 도산서원이 유명해진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의 학문이었던 유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기 때문이야. 이황은 유학의 한 학파인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맞게 완성한 사람이지.

이러한 이황이 죽자 그의 제자들이 서당 옆에 스승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을 만들었어. 상덕사에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전교당이란 강당을 만들어 학문을 논하였으며, 동ㆍ서 재를 지어 서원을 완성했지. 그러다 1575년(선조 8년) 한호(한석봉)의 글로‘도산서원’이라고 적힌 현판을 받음으로써 서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어.

도산서원에서 학문을 갈고닦은 이황의 제자들이 훌륭한 유학자로 성장하면서 우리나라 성리학 교육의 중심이 되었어. 지금도 품위가 느껴지는 도산서원은 우리나라 선비처럼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도산서원에는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고, 학문의 중심이었던 곳답게 4000권이 넘는 책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어.

유학이란 중국의‘공자’에게서 시작된 학문으로 인(仁)과 예(禮)를 근본으로 삼느니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서원은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에 대해 논하고, 훌륭한 학자와 같이 존경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야.

/자료 제공: ‘상식발전소-찌릿찌릿 문화재’(정민지 글ㆍ이동현 그림ㆍ소담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