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북한 전래동화] 농부와 기장나무
<농부와 기장나무>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봄이 되자 농부는 부지런히 밭에 나가 기장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기장 씨를 뿌린 지 얼마 안 되어 농부는 병이나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기장밭에 풀이 무성할 텐데…….”

농부는 애가 탔습니다. 얼마 뒤, 농부의 병이 차츰 낫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호미를 들고 기장밭으로 나갔습니다.

역시나 밭에는 잡풀들이 잔뜩 우거져 있었고, 그 속에 기 장 한 포기가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농부가 한숨을 내쉬는데, 수염이 허연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더니 말했습니다.

“기장이 한 포기뿐이라도 버려두지 마시오. 혹시 아오? 기장이 나무가 될지.”

노인은 이 말을 남기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농부는 노인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습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욱신거릴 때까지 열심히 김을 맸습니다.

“이 기장이 정말 나무가 되려나?”

신이 난 농부는 물과 거름을 듬뿍 주며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기장은 도끼로 찍어도 넘어가지 않을 만큼 아름드리나무로 자랐습니다. 쭉쭉 뻗은 가지마다 이삭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농부는 기분이 좋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전에 보았던 수염이 허연 노인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뭐가 좋아서 그리 웃소?”

“어르신 말씀대로 기장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낟알을 어떻게 거둬들여야 할지…….”

“가지를 털어서 떨어뜨리면 될 걸 무슨 걱정이오? 내가 털어 주리다.”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기장나무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발로 가지를 굴렀습니다. 그러자 낟알이 싸락눈처럼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이만하면 됐소?”

“네, 되고말고요.”

농부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뜻하지 않게 부자가 된 농부는 그해 겨울을 편안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남들은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면서 내년 농사 준비를 했지만, 농부는 겨우내 놀고먹기만 했습니다. 봄이 되자, 농부는 전처럼 밭에 기장 씨를 뿌렸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열심히 김을 매는 동안, 농부는 밭에 나가지 않고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낮잠만 잤습니다. 남들이 마지막 김을 맬 때에야 농부는 비로소 호미를 들고 기장밭으로 나갔습니다. 지난해처럼 기장은 우거진 잡풀 속에 한 포기만 자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걱정은커녕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작년과 똑같은 걸 보니 올해도 풍년이 들겠구나. 이제 그 노인을 만나기만 하면 돼.”

농부가 밭둑을 서성거리는데, 수염이 허연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습니다.

“왜 그러고 있소? 올해도 병이 나서 김을 매지 못한 거요?”

농부는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얼버무렸습니다.

“아니, 그냥 어쩌다 보니……. 밭이 이 지경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김은 열심히 매어야 하오. 혹시 아오? 기장이 나무가 될지.” 노인은 이렇게 말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대충대충 김을 맸습니다. 이윽고 가을이 되자, 농부는 낫을 들고 기장밭으로 나갔습니다. 지난해처럼 기장나무에 이삭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농부는 낟알을 거둘 생각은 하지 않고 노인이 나타나기만 기다렸습니다.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오지 않지? 내가 복을 타고났으니 곧 나타날 거야.”

그때 수염이 허연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습니다. 농부는 노인을 반갑게 맞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어르신을 무척 기다렸습니다. 올해도 기장나무에 올라가 기장을 털어 주셔야지요.”

“다 익은 낟알을 나무라고 못 털겠소. 내가 또 털어 주리다.”

노인은 기장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지팡이를 휘두르며 발로 가지를 굴렀습니다. 그러자 기장이 우수수 떨어져 순식간에 농부의 무릎 높이만큼 쌓였습니다.

“이만하면 되었소?”

“조금만 더 털어 주세요.”

우수수 떨어진 기장은 농부의 허리 높이만큼 쌓였지만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기장이 나무 키만큼 쌓였을 때, 농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됐어요!”

기장을 다 털고 난 노인은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농부는 마을을 돌며 일꾼들을 모았습니다.

“내가 올해도 힘들이지 않고 기장 농사를 지었소. 우리 마을 사람들이 며칠은 날라야 할 만큼 대풍년이니, 어서 가서 기장을 날라 주시오. 삯은 후하게 쳐 드리리다.”

농부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지게를 지거나 달구지를 끌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기장밭에 다다르자, 농부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눈앞에 기장이 아니라 고운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모래알을 한 움큼 움켜쥔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 습니다.

“이건 기장이다! 누런 기장이야!”

농부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모래산을 뛰어오르다 퍽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쯧쯧, 땀흘리지 않고 어떻게 낟알을 거둔다고.”

“그러게 말이오. 복 타령만 해 대며 게으름을 피우더니, 거참 꼴좋게 됐구려!”사람들은 농부를 보며 껄껄 웃어 댔습니다.

/자료 제공=‘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북한 전래 동화(박상재 글ㆍ서영경 그림ㆍ함께자람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