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이 낳은 '스페이스 간담 V'
장난감 수집가 김혁의 '장난감 이야기'
일본 3단 로봇 '발키리' 원형 본떠
'변신 시스템' 훨씬 부드럽고 정교

김혁(장난감 수집가)
'로보트 태권 V'로 유명한 김청기 감독이 1983년 또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간담 V'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먼 우주에 있는 시그마 별의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상 과학물이다.

시그마 별의 외계인들은 온갖 첨단 무기와 로봇들을 동원해 지구를 공격하고, 세계 여러 나라는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이때 선량한 외계인이 등장해 지구를 돕기 위해 비장의 로봇을 출동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스페이스 간담 V'다.

이 애니메이션이 방송된 뒤, 인터넷에는 스페이스 간담 V에 관한 글들이 수없이 올라왔는데, 주로 주인공 로봇의 디자인에 관한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로봇의 디자인을 그대로 본떴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봇의 이름과 디자인을 각기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져와 더욱 문제가 됐다.

스페이스 간담 V의 로봇 디자인은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에 등장하는 '발키리'라는 로봇의 모방이다. 하지만 '간담 V'란 로봇의 이름은 유명한 '기동전사 건담'에서 따왔다. 이를테면 '미키마우스'를 흉내 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이름은 전혀 엉뚱하게 '아톰'이라고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이 일의 실마리는 다름 아닌 일본 장난감의 복제에 있다. 스페이스 간담 V를 만들었던 김청기 감독은 1982년 국내 한 장난감 회사의 부탁을 받고 '슈퍼 태권 V'를 만들었다. 그때 장난감 회사가 요구한 모델이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자붕글'이다. 일본을 방문했던 이 장난감 업체 사장이 그 로봇 장난감을 사 온 다음, 김청기 감독에게 바로 그 로봇을 등장시킨 영화를 만들도록 부탁했고, 자신은 그것을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흥행 성공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시장 반응에 공급이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난 아이들이 로봇을 사달라고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공장까지 찾아 온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슈퍼 태권 V가 성공한 이후 비슷하게 시도되었던 기획이 바로 스페이스 간담 V이었다. 여기에 '간담'이란 전혀 엉뚱한 영화 제목이 붙은 것은 단순한 시나리오 상의 표절로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만들어낸 스페이스 간담 V의 로봇 장난감이 너무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일본의 기술진도 감탄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나 장난감 회사 입장에서 볼 때는 디자인을 도둑을 맞은 것이나 다름 없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우주선과 로봇 등 3단으로 변신하는 원조 발키리 로봇 장난감보다 스페이스 간담 V의 변신 시스템이 훨씬 부드럽고 정교했다.

스페이스 간담 V 장난감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또 있다. 1980년대 후반,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가 '로보텍'이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방영돼 인기를 끌자, 미국에서도 이 로봇 장난감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로봇을 만들던 일본의 장난감 회사가 그만 부도가 나고 말았다. 당황한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에서는 결국 스페이스 간담 V 로봇을 만든 한국의 장난감 회사에 연락해 '마크로스'라는 제품으로 새롭게 포장해 미국으로 수출해 줄 것을 요청했고, 실제로 많은 스페이스 간담 V 로봇이 마크로스란 이름을 달고 미국에 수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