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년 특집]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이원복 교수

윤석빈 기자 binys@snhk.co.kr
사진=황재성 기자 goodluck@snhk.co.kr
2010년은 우리 나라 최초의 어린이 일간 신문인 소년한국일보가 태어난 지 50 돌을 맞는 해이다.

1960년 창간한 소년한국일보는 반세기 동안 한국 어린이의 멘토구실을 해왔다. 새소식은 물론 동화ㆍ동시, 만화를 비롯해 과학ㆍ역사ㆍ문화 관련 연재물로 동심 밭에 지혜의 단비를 뿌리고, 다양한 음악ㆍ미술 행사로 정서의 새싹을 길러 주었다.

이 길에서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필자와 독자, 또는 심사위원ㆍ기고가ㆍ기사의 주인공 등으로 소년한국일보와 인연을 맺어 왔다.

창간 50 주년을 맞는 소년한국일보와 더불어 어린이 사랑을 실천해 온 이들 명사로부터 '나와 소년한국일보'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첫 번째로 국민 교양서가 된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작가 이원복 교수(63ㆍ덕성여대 예술학부)를 만났다./ 편집자

"소년한국일보를 통해 '먼 나라 이웃 나라'가 태어났어요. 저에게 소년한국일보는 고향 집, 또는 친정 같은 곳이지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이원복 교수는 옛 추억을 자랑하듯 소년한국일보와의 인연을 들려 주었다.

1987년 단행본으로 첫 출간된 이래 이제까지 1300만 권 이상 팔리며 국민 필독서로 자리매김한 '먼 나라 이웃 나라'는 1981년 10월 2일 소년한국일보 1면을 통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이 교수가 고국에 잠시 들렀을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고 김수남 소년한국일보 사장의 제안이 '씨알'이 됐다.

"외국에 나가기가 쉽지 않던 시절, 유럽에서 보고 들은 문화ㆍ역사ㆍ교양ㆍ상식 등을 만화로 전하는 것이야말로 의미있는 일이라며 '먼 나라 이웃 나라'란 제목도 직접 지어 주셨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해외에서 매일 만화를 연재하는 상황이 결코 쉽지 않았음에도 이 교수는 어린이를 위한다는 마음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뒤 구상과 자료 준비 등의 발아 과정을 거쳐 선보인 '먼 나라 이웃 나라'는 1986년 말까지 무려 5 년 3 개월 동안 1376 회 연재됐다.

당시로서는 주제와 구성, 내용이 모두 새로운 만화로 관심을 끌었다. 이 교수는 특히 연재 기간 중 단 한 차례도 원고 마감일 넘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2주일 전에 미리 한 주치를 작업해서 늦어도 일주일 전에는 항공 우편으로 보내야 했는데 힘들기는 해도 정말 보람있었지요."

이 교수는 이것이 바로 진정한 프로 정신이라며, 이때 몸에 밴 철저한 준비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화가로서 이 교수와 소년한국일보의 첫 인연은 '먼 나라 이웃 나라'보다 훨씬 전인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고 1학년 재학 시절,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소년한국일보의 조풍연 주간이었다. 조 주간은 우연히 친구와 함께 편집국에 놀러 온 이 교수의 그림 솜씨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만화 연재를 맡겼다.

"처음에는 미군 부대에 돌아다니는 명작 만화를 베끼고, 한글로 번역한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첫 작품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바로 월터 스코트의 소설을 만화로 만든 '아이반호'였지요."

이렇게 소년한국일보와 인연을 맺은 이 교수는 엉클톰스 캐빈, 마르코폴로 등을 연재했다. 대입 재수 때문에 1965년을 잠시 붓을 놓았지만, 이듬해인 1966년 서울대학교에 입한한 뒤에도 만화 연재를 이어갔다.

"많이 그릴 때는 이상권, 성창경 등 친구들의 이름을 필명으로 쓰며 여러 작품을 동시에 연재했어요. 그때는 편집국 한 편에 제 자리도 있었고, 만화 때문에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어요."

번역 만화에 이어 순수 창작 만화인 '야망의 그라운드', '미니 바람 꽃구름', '사랑의 학교', '자마곰 3 형제' 등을 소년한국일보를 통해 탄생시켰다.

이 무렵 이 교수는 1970년대 소년한국일보가 여름 방학마다 남이섬에서 열던 어린이 캠프에도 참여할 정도로 한 식구처럼 지냈다.

한마디로 그의 만화 인생이 소년한국일보의 역사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만하다.

"10대에 시작된 인연이 40대까지 25 년 이상 이어진 게 보통 인연은 아니지요. 얼마전 중학동에 들렸다가 한국일보 건물이 재건축 때문에 사라진 것을 보고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제 맘 속에는 아직도 소년한국일보와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 교수는 자신의 만화 인생에서 소년한국일보를 절대 뺄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제 만화의 특징이요? 빈 칸이 별로 없고, 대사가 많은 거예요."

이 교수의 만화를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독특한 작화 스타일은 물론 어린이에게 감동과 꿈을 전해야 한다는 소년한국일보의 정신과 맥이 이어져 있다.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를 하면서 지면을 낭비하는 건 죄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한 칸을 채우더라도 대충 넘어갈 수 없었어요."

이 교수의 이 같은 말 때문일까. 반세기 소년한국일보의 역사와 이원복 교수가 걸어온 길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어린이 문화의 불모지에 어린이 신문과 기행 만화라는 싹을 틔웠으며, 구독률과 단행본 만화 판매율에 있어 1위에 올라서기까지 한시도 쉼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올곧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는 진정성 또한 공통 분모로 자리하고 있다.

"날마다 만화를 연재한 신문은 소년한국일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소년한국일보는 젊은 시절 제 가슴 속 꿈동산이었고, 어린이들과 저를 이어 주는 매듭이었지요."

이 교수는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한 만화를 통해 자신의 꿈을 그렸고, 그 꿈을 어린 독자들과 함께 나눠 가졌다고 말했다. 세대를 거쳐 이제 손자뻘 되는 어린이들이 소년한국일보를 읽으며 자신의 젊은 시절 느끼고 나눴던 그 꿈을 가슴에 담아 주기 바란다는 이 교수다.

아울러 50 세 장년의 소년한국일보가 푸른 제호처럼 언제나 꿈을 담은 어린이의 친구이자 멘토로 창창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어린이들과 호흡하고 소통해달라는 바람도 털어 놓았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서 날마다 만화를 연재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린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소년한국일보 역시 저와 같은 마음으로 앞으로도 50 년, 100 년 동안 어린이 곁에 영원히 남아있길 바랍니다."

둥근 안경 너머로 비치는 이원복 선한 눈빛과 얼굴 가득 머금은 순수한 미소가 유난히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