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대표 먹거리 '냉면' 언제부터 인기 있었을까?

/송은하 기자 dia@s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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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차 몸이 떨려 냉면 냉면 냉면, 질겨도 너무 질겨 냉면 냉면 냉면, 그래도 널 사랑해’(명카드라이브 ‘냉면’중)

차가워도 먹고 질겨도 먹는다. 말아서도 먹고 비벼서도 먹는다. 전문점에서도 먹고 분식집에서도 먹는다. 그렇게 ‘냉면’을 먹고 또 먹는 계절이 왔다. 여름이면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는 냉면의 인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냉면의 변천사를 추적해 봤다.

△북한에서 온, 궁중에서 즐긴 겨울 별미

평양냉면, 함흥냉면.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냉면의 본고장은 이북(북한)이다. 냉면이 처음 나오는 문헌은 ‘동국세시기’(1849년)로, 11월에 먹는 음식으로 소개된다.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메밀국수를 말고 여기에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 한다.’ 그러면서 ‘냉면은 평안도 냉면이 최고’라 적었다. 그 시절 냉면은 ‘추운 겨울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밋국으로 만든’ 대표적인 겨울 별미였다. 선조들은 냉면을 먹으며 이냉치냉, 즉 추위를 추위로 이겼다.

하지만 1800~1900년대 냉면은 아무나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냉면의 주재료인 고기와 메밀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궁중의 잔치 기록서인 ‘진찬의궤’ㆍ‘진연의궤’를 보면 궁중의 잔칫상에 두 차례 냉면이 오른 내용이 남아 있다. 1848년 순조 비(임금의 아내)의 육순(환갑) 축하 잔치와 1873년 강령전 화재로 사라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연 잔치에서다. 양반가의 요리책(규합총서 ‘장사의’)에도 냉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처럼 당시 냉면은 궁중과 일부 양반층을 위한 별미였음을 알 수 있다.

△‘배달의 민족’ 우리나라 배달 음식 1호

냉면은 우리 민족 최초의 배달 음식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의 ‘이재난고’에는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날짜는 1768년 7월이다. 당시 궁중에서 즐기던 고급 요리인 냉면이 양반층에까지 인기를 끌며 배달이 시작된 걸로 보인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순조(1800~1834)가 즉위 초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냉면은 배달뿐 아니라 ‘포장’까지 해 먹는 음식이었던 것. 교방(기생 학교, 이것이 있던 지역) 문화가 발달한 진주에선 관아 기생도 진주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고 한다.

1920~30년대부터는 배달 문화가 널리 퍼지며 냉면이 불티나게 팔렸던 걸로 확인된다. 이 무렵 각종 탕과 냉면ㆍ국밥 등으로 배달이 확대됐고, 배달원의 일상이 신문에 소개될 정도였다. 1924년 월간지 ‘개벽’ 기사를 보면, 한 그릇에 15전 하는 냉면으로 하루 매상 300원을 올린 가게가 등장한다. 무려 2000그릇이 팔린 셈이다. 당시 냉면 배달부를‘중머리’라 불렀는데, 1926년 1월 6일자 ‘동아일보’에는 이들의 파업 기사가 실렸다. 배달량이 폭주하는 데 비해 일급 60전이 너무 적다는 주장이었다. 사흘 후 이들의 협상은 성공했고, 일급은 1원으로 올랐다.

△후루룩 뚝딱, 여름 얼리는 ‘국민 음식’

양반 계급의 별미였던 냉면이 국민 누구나 즐기는 ‘서민 음식’이 된 데에는 ‘아지노모토’의 영향이 컸다. 아지노모토는 1908년 일본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가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1910년 국내에 수입된 화학조미료이다. 이전까지 관리가 번거로운 동치미 국물로 냉면 육수를 쓰던 식당 주인들은 반색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육수와 마찬가지로 면발도 일률화 과정에 접어든다. 1932년 김규홍 씨가 무쇠 제면 기계를 발명하면서 손으로 면을 뽑는 것보다 속도가 세 배 이상 빨라졌다. 면발과 육수를 더 빨리, 더 편하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냉면 판매는 점점 더 늘어난다.

하지만 냉면집마다 갖고 있던 고유의 개성이 사라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냉면집 10곳이 있으면 10곳마다 각기 다른 면과 육수를 선보이던 시절이 지나고, 한식ㆍ분식ㆍ중식 등 모든 식당에서 비슷한 맛의 냉면을 만들어 내게 됐다. 현재는 슴슴하고 담백한 육수 맛이 일품인 ‘평양냉면’과 매운 양념장에 생선회를 곁들여 비벼 먹는‘함흥냉면’ 정도가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언제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냉면. 그래도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냉면을 떠올린다. 최근 오픈 마켓 옥션이 고객 14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여름철 대표 음식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냉면’(45%)이었다. 궁중 별미에서 배달 원조로, 다시 국민 음식으로. 냉면은 변해도 냉면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계속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