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보GO 역사도 알GO] '문무 대왕릉'(경주시 양북면 동해안로)
대왕암이라 불리던 곳

동해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는 자그마한 섬처럼 몇 개의 바위가 떠 있어요. 옛날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라 제30대 임금인 문무왕의 무덤이라 여겨 대왕암이라 불렀어요. 그 뒤 학자들이 여러 역사적인 기록을 검토하고, 조사와 연구 끝에 대왕암이 실제로 문무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밝혀냈지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당나라와 연합하여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에도 북쪽의 고구려에게 위협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668년 고구려 지배층끼리 다툼이 일어나자 신라는 다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했어요. 결국 고구려는 멸망했지만, 이번에는 당나라가 신라까지 지배하려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어요. 이에 문무왕은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김유신 등의 활약으로 마침내 삼국통일을 이루었답니다.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노라.”

문무왕의 무덤은 왜 다른 왕들처럼 땅이 아닌 차가운 바다에 있을까요? 동해안에 왜구들이 쳐들어와 주민들을 죽이고 약탈을 저지르자, 문무왕은 동해안에 군사와 방어 시설을 늘리는 한편, 절을 짓기 시작했어요.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를 물리치려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러나 절이 다 지어지기도 전에 문무왕은 병이 들고 말았어요. 죽음을 앞둔 문무왕은 아들을 불러 말했어요. “내가 죽으면 동해에 묻어다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침략하는 무리를 무찌를 것이다.” 문무왕이 죽자 뒤를 이어 왕이된 신문왕은 유언을 따라 문무왕의 시신을 화장하고, 동해에 떠 있는 바위틈에 장사를 지냈어요. 바로 대왕암이라고도 부르는 문무 대왕릉이지요.

수중릉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문무 대왕릉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중릉이에요. 바다 한가운데에 불쑥 솟은 작은 바위 사이에 만든 희귀하고도 신기한 무덤으로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답니다. 문무 대왕릉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작은 바위섬처럼 보이지만, 바위 위에 올라가 보면 한가운데 연못처럼 패여 있는 공간이 있어요. 그 둘레에는 암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기둥처럼 세워져 있고, 연못처럼 보이는 공간에는 거북이 등처럼 생긴 큰돌이 얹혀 있지요.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며 지은 절

아버지 문무왕이 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라고 지었지요. 현재는 절터와 앞뜰에 탑 2기만 남아 있어요. 동서로 나란히 서 있는 이 3층 석탑은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는 쌍탑으로, 국보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무덤

아무리 거센 파도가 쳐도 바위로 에워싼 연못 안은 늘 바닷물이 맑고 잔잔하게 유지된다고 해요. 연못의 사방으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물길이 나 있는데, 이 수로를 통해 동쪽으로 흘러 들어온 바닷물이 연못 안을 천천히 돌다가 서쪽으로 흘러 나가기 때문이지요. 이는 신라인들이 문무 대왕릉을 인공적으로 다듬어서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어요.

/자료 제공: ‘통합지식 100 우리나라 유적지’(주니어RHK)


[관련 교과] 경주 문무 대왕릉
삼국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은 동해에 묻혀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고 한 유언에 따라 바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