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의 숨은 그림 찾기] 백호정 바위 글씨
▶ 가는 방법
필운대에서 배화여중 후문으로 나와 왼쪽으로 골목을 따라 걷다가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세요.

※백호정은 배화여대 담장 아래쪽에 있어서 거리상으로는 필운대와 멀지 않지만, 곧장 내려가는 길이 없어 돌아가야 해요.


여러분, ‘선비’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책을 펴고 앉아 있는 모습이나 붓글씨를 쓰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런데 공부 외에 말타기, 악기 연주, 활쏘기도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고 하네요. 그 가운데 활쏘기는 선비뿐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던 놀이였지요.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활쏘기를 장려했거든요. 훗날 다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는 훈련 차원에서 권장한 거죠.

조선 시대에는 곳곳에 활 쏘는 정자가 있어 이를 ‘사정(射亭)’이라 불렀어요. 오늘날 ‘사정리’라는 지명을 쓰는 곳은 대부분 예전에 활 쏘는 장소가 있던 곳이라고 보면 돼요.

인왕산 부근에도 사정이 다섯 개 있었다고 해요. 그중 한 곳인 ‘백호정’에 가 볼게요.

백호정은 현재 활 쏘는 곳은 사라진 채 글씨만 남아 있죠. 가게 건물은 없어지고 간판만 남은 셈이에요. 하지만 고작 글씨만 남은 거냐며 실망하지 마세요. 백호정 글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거든요.

이 글씨는 숙종 때 엄한명(嚴漢明)이라는 분이 썼어요. 처음 들어 본 이름이라고요?

여러분, 조선 시대에 글씨 잘 쓰기로 유명한 사람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글 쓰는 솜씨와 떡 써는 솜씨를 겨루었던 한석봉과 그 어머니의 유명한 이야기 알죠? 엄한명은 바로 그 한석봉 이후의 일

인자로 일컬어지며 글씨 잘 쓰기로 이름을 날렸던 분이에요. 백호정이라 쓰인 글씨를 다시 한 번 한 자 한 자 살펴보세요. 글자 획이 정갈하고 힘있어 보이지요.

자, 바위 아래쪽의 작은 철문도 함께 살펴볼까요? 지금은 닫혀서 볼 수 없지만, 샘물이 나오는 곳이에요. 백호정 샘물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와요.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고 있었는데, 이 호랑이가 병이 났더래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가만 보니 호랑이가 수풀 속에서 물을 찾아 먹고는 병이 낫더라는 거죠. 그때부터 사람들도 이 샘물을 마셨다고 해요. 정말 호랑이가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은 것인지는 알 수 없어요.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있어요. 사람들이 백호정 샘물에 병을 낫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왔다는 것, 그리고 호랑이가 먼저 발견할 정도로 샘물이 수풀 속 외진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죠.

한편, 1920년의 신문 기사에 백호정이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정자 안에서 낮잠을 자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다는 내용이 보여요. 그런데 4년 뒤에 나온 신문 기사에는 ‘백호정’ 대신 ‘백호정 터’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죠. 또 터만 쓸쓸히 남아서 이제는 활 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나무에 바람 소리만 들린다는 얘기도 덧붙여 놓았네요. 아마도 1920년에 백호정 정자가 무너진 뒤, 이후 폐허가 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듯해요.

/자료 제공=‘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안민영 글ㆍ임근선 그림ㆍ책과함께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