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동문학인협회 선정 2017년 4분기 우수 작품상
한국아동문학인협회(회장 김원석)는 최근 ‘2017년 4분기(10~12월) 우수 작품상’ 2편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동시 부문 수상작은 ‘엄마의 가슴에도’, 동화 부문 수상작은‘용정의 별 헤는 밤’입니다. 이 본보기 글을 읽으며 문학 작품 감상 요령도 익히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동시 -'엄마의 가슴에도'

이성자

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는데

의사 선생님이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금이 갔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위로해주었어

한 밤중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우리 딸,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가 깁스 한 내 발가락에

입을 맞추며 눈물 그렁그렁

보이지 않지만

엄마의 가슴에도

천 갈래 만 갈래 금이 간 게지.

동화-'용정의 별 헤는 밤'

박마루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오마니, 오마니이!" 아줌마가 고무장갑 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설거지통의 물이 사방으로 마구 튕겨 나갔다.

"풋!" 나는 웃음을 삼키며 신발을 신었다.

“아줌마, 학원 갔다 올게요.” 아무 대답이 없다. 아줌마는 지금 시를 외우느라 내 목소리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땡!” 승강기가 도착하자 나는 곧바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허겁지겁 아줌마가 달려 나오는 게 보였다.

“가면 간다 해야지? 모를 뻔 했잖아” 승강기 문을 사이에 두고 나랑 아줌마의 눈이 딱 마주쳤다. 바로 이때다 싶어 나는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오마니이이!” 아줌마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자기를 놀리는 걸 알아채고는 발을 동동동 굴렀다.

“야 은호 너! 너…….”, “크크큭.” 배를 잡고 웃어대는 내 앞으로 승강기 문이 스르르 닫혔다.

요즘 아줌마는 윤동주 시에 푹 빠져 있다. 아줌마가 그렇게 된 건 얼마 전 국어 수업이 있던 날부터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부랴부랴 아줌마를 찾았다.

“아줌마, 중국 용정이 고향이라고 했죠?”, “그건 와 묻나?”

아줌마는 뜬금없다는 듯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윤동주도 알겠네요?”, “윤동주? 그게 누구가?”, “아이참, 시인 윤동주요. 아줌마는 같은 고향이라면서 그것도 모르세요?”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온 건 일 년 전, 4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회사에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나도 돌봐 주고 집안일도 돕기 위해서였다. 그때 아줌마가 중국 용정에서 왔다고 한 게 떠올랐다.

“아줌마, 여기 좀 보세요.” 나는 교과서를 펼쳐 아줌마에게 보였다.

“책이 참 예쁘고 곱구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윤동주라는 시인인데요.”

나는 서둘러 말을 잘랐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야기가 어디로 샐지 몰랐다. 아줌마와 얘기를 하다 보면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분은 국민 시인인데요.”, “국민 시인?” 아줌마가 눈을 껌벅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눈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분의 시 한 편 정도는 안다는 말이죠.”

“그래? 그렇게 훌륭한 분을 어케 나는…….”, “뭐 그야 아줌마는 중국사람!”나는 재빨리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아줌마를 힐끔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줌마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아줌마의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주로 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줌마는 누가 중국 사람이라고 하는 걸 엄청 싫어한다. 지금도 내가 한 말에 그만 기분이 팍 상해버린 것이다.“아줌마, 화났어요? 내가 그렇게 말한 건…….” 애써 변명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줌마는 얘기를 하다 말고 쌩하니 부엌으로 가버렸다. 그러더니 며칠 뒤, 느닷없이 아줌마가 윤동주 시를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두고 보라. 윤동주 선생의 시라면 싹 다 외우갔어!” 이렇게 큰소리까지 뻥뻥 치면서 말이다.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줌마가 안 보였다. 대신 엄마가 일찍 와있었다. 모처럼 엄마랑 있다 보니 아줌마가 궁금해진 건 밤이 다 되어서였다.“아줌마 시장 간 거야?”, “신림동 아저씨한테 가셨어.”

신림동 아저씨는 아줌마의 남편이다. 아줌마 말에 의하면 아저씨는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좁디좁은 방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래도 아줌마는 토요일마다 아저씨를 만나러 신림동에 갔다.

“오늘은 토요일도 아니잖아?” 나는 이상하다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실은 아저씨가 많이 다쳤나봐. 아빠가 가셨으니까 곧 알 수 있을 거야.”

나도 아저씨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아줌마의 부탁으로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낼 게임기를 사러 갔을 때였다. 물건을 고르는 데는 10분도 안 걸렸는데 아저씨는 내가 내미는 물건마다 비싸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 바람에 계산을 다 마쳤을 때는 이미 해가 어둑해지고 배까지 고파왔다. 하지만 구두쇠 아저씨가 맛있는 걸 사줄 리가 만무했다.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데 분식점 앞을 지나던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은호, 혹시 저런 거 먹을 줄 아네?”, “그럼요.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나는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아저씨와 아줌마가 라면을 먹는 사이, 떡볶이 2인분을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날 이후 떡볶기만 보면 아저씨 생각이 절로 났다. 밤이 늦어서야 아빠가 돌아왔다. 공장에서 철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생겼는데 아저씨가 그만 그 밑에 깔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저씨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된다고 했다. 아줌마가 간 지 일주일쯤 되는 날이었다. 혼자 집에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은호니? 나야 아줌마야!” 나는 하마터면 전화기에 대고 엉엉 울 뻔 했다. 아줌마는 밥은 잘 먹느냐 어쩌느냐 한참 동안 안부를 묻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닌……, 말이야.” 지난번에 산 게임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닌텐도요. 그건 왜요?”, “암만 해도 여기 일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말이야.”

내가 대신 좀 보내 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전에도 아줌마를 대신해 중국으로 소포를 보내본 적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우체국 가는 길 내내 엠피스리를 귀에 꽂고 갔다. 기분이 계속 우울했는데 신나는 가요를 듣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아줌마의 아들이 떠오른 것이다. ‘나도 이런데 엄마도 없고 아빠까지 다쳤으니 애는 얼마나 속상할까…….’

바로 그 순간 나는 꽂고 있던 엠피쓰리를 빼서 닌텐도와 함께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날 밤 모처럼 아빠가 일찍 들어왔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걷기는 어려울 것 같죠?” 엄마가 신림동 아저씨에 대해 물었다. 아빠는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럼 아줌마 중국으로 가야 돼요?” 걱정이 되어 묻는 말에 엄마는 대답은커녕 나의 질문을 싹둑 잘라먹었다.

“은호 너, 숙제는 다 한 거야?” 묻는 말에 얼토당토 않는 대답을 하는 건 아줌마의 주특기다. 그런데 엄마까지 이럴 줄이야!

“네 사모님!” 나도 보란 듯이 아줌마 말투로 넙죽 받아넘겼다. 그러자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나도 함께 웃었지만 곧 시들해졌다. 아저씨가 그렇게 되었는데 생각 없이 웃고 있는 게 왠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오늘은 중간고사를 위해 특별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학원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은호, 은호!”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줌마였다. 마치 물살에 떠밀려가는 나뭇잎처럼 아줌마는 아이들 틈에 간신히 버티고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줌마!” 나는 정신없이 달려가 아줌마 품에 덥석 안겼다. 못 보던 사이 아줌마는 눈도 움푹 들어가고 양쪽 입가의 주름도 깊게 패여 한눈에 봐도 고생한 티가 팍팍 났다.

“이제 다시 온 거죠?” 아줌마는 대답은 하지 않고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으잉? 얼굴이 와 이러나? 한 달은 굶은 사람 같구만.”

역시 아줌마다. 얼굴만 봐도 내 마음을 단박에 알아낸다. 나는 아줌마의 팔을 잡아당기며 어린양을 부렸다.

“아잉, 아줌마. 나 배고파잉.”, “근데 이거 어카나! 나랑 어디 좀 들러야겠는데?”

아줌마가 상가 쪽을 가리켰다. 또 중국에 보낼 물건을 고를 모양이다. 까짓 거 아줌마도 왔는데 배고픈 것쯤이야, 나는 아줌마를 보며 턱을 쭉 내밀었다.

“이번엔 뭘 살 건데요?”, “운동화를 샀으면 해서리…….”

아줌마는 보자마자 부탁부터 하는 게 좀 미안했던지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뭐, 운동화야 금방 고를 수 있다. 나는 아줌마와 함께 가까운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이게 요즘 완전 짱이에요. 우리 반 아이들도 다 신고 다녀요.” 실은 내가 신고 싶던 거였다. 하지만 지금 것도 멀쩡한데 무슨 소리냐며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서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신어보라.” 아줌마는 내 발을 여기저기 꾹꾹 누르고 걸어봐라 뒤로 돌아봐라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아줌마가 하라는 대로 움직였다.

한참동안 운동화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아줌마는 결심이 섰는지 계산대로 갔다.

“이 신발 똑같은 걸로 두 개 주시라요.” 아무리 유행도 좋지만 같은 걸 두 개씩이나 사다니!

나는 그럴 거라면 차라리 다른 디자인을 골라 보자고 부득부득 말렸다. 하지만 기어코 계산을 다 마친 아줌마는 그 중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일 중국에 가져갈 거고, 요건 은호 네 거야.”

“아줌마?”, “받으라. 아줌마가 이별 선물로다 특별히 주는 거야. 팔 떨어지갔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 가야 돼요? 안 가면 안 돼요?”, “걷지도 못하는 아저씨를 어케 혼자 보내겠어.”

조금 전만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아줌마가 별안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엠파스진 뭔지 말이야?”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았다.

“왜요? 쓰던 거 줬다고 뭐라 그래요?”

“무슨 소리! 아주 신났지. 우리 아들이 고맙다면서 꼭 갚겠다고 전해 달랬어. 암! 갚아야지. 고럼!”

아줌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어깨가 휘청했다.

“아앗! 그렇게 세게 잡으면 어떡해요?”, “너야말로 사나이가 고렇게 엄살을 떨어서 어떡하나?”아줌마와 내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 어느새 거리는 별빛보다 환한 불빛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아줌마의 손을 잡았다.

“전에 윤동주 시 외우기로 했던 거요.” 아줌마 손이 움찔했다.

“아! 그, 그거 말이야. 은호도 알다시피 이 아줌마가 좀 바, 바빴어야 말이지.”

말까지 버벅대는 걸 보니 은근 당황한 모양이다. 그럴수록 나는 시치미를 뚝 뗐다.

“아, 뭐예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국민 시인의 시 정도는 외워야죠.” 우리나라를 말할 땐 일부러 더 세게 힘을 주었다.

“아, 알았어. 외우갔어. 외우면 되잖아.” 마침내 아줌마가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이제야 본래 아줌마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큰소리만 쳤을 뿐 또다시 잠잠했다. 답답해서 고개를 드는데 더듬더듬 아줌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네다. ……,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별들을 다 헤일 듯합네다. …… 별들이 아스라이 멀 듯이 오마님, 당신은 저 멀리 북간도에 계십네다.”

비록 손은 들거나 고함을 치지 않았지만 아줌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느껴졌다.

아줌마의 시는 공원을 지나 길을 건너 다시 신호등 앞에 섰을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문득 아줌마의 시가 메아리 같다고 생각했다. 내를 넘어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동시 “새로운 길” 중에서.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용정의 밤하늘까지도 닿을 것만 같은 그런 메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