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우리나라 인류 무형문화유산
나무로 집을 짓는 최고의 장인 '대목장'

나무를 대하는 자세

“어명이오!” 역사극에는 이런 말이 자주 나와. 임금의 명령을 전할 때 하는 말이잖아. 옛날 목수들은 이 말을 사람이 아닌 나무한테 썼다고 해. 나무가 사약이라도 받는 걸까? 그건 아니지만 생명을 잃게 되는 처지는 같아.

궁궐을 지으라는 명령이 나면 목수들은 궁궐 지을 재료를 준비해. 숲을 다니면서 알맞은 나무를 찾고, 나무를 베기 전에는 의식을 치렀다고 해. 나무한테 도끼를 들이대기 전에 미리 ‘어명’이라고 알리는 거야.

이런 말도 했다고 해. “도끼 들어갑니다!”

요즘도 나무를 벨 때면 이 말을 쓴다고 해. 예나 지금이나 자연 앞에서 겸손한 목수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이야. 나무로 건물을 짓는 일을 해. 전통적인 한옥, 궁궐, 사찰 같은 중요한 목조 건물을 짓는 일을 해 왔어. 옛날부터 전해 오는 전통적인 건축 방법을 잘 익혀 지금까지 전하고 있지.

대목장은 목수들의 우두머리야. 나무를 다루어 큰일을 하는 자리지. 대목장은 여간일이 많은 게 아니야. 건물의 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하고, 잘되어 가는지 감독하고 관리하는 등 나무를 재료로 하여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이 들어가 있지. 그러니까 현대의 직업으로 치면, 건축가나 마찬가지야.

대목장이 완성한 목조 건축물은 우아하고 간결하며 소박해. 이런 점이 바로 한국 전통 건축의 고유한 특징이 됐어. 못을 쓰지 않고 서로 이어‘천년을 견디는 이음새’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

대목장 수업

예전에 목수 수업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이었어. 제대로 가르쳐 주는 이도 없이 어깨 너머 혼자 깨우쳐야 하는 일이었지. 대목장 기능 보유자인 전흥수 대목장이 어떻게 목수 수업을 받았는지 인터뷰한 자료가 있어.

전흥수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 15살에 다식판(우리나라 전통과자인 다식을 만드는 판)을 만들었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대. 그렇다고 목수 수업이 거저 되지는 않았나 봐. 전흥수는 허드렛일부터 했어. 아버지 밑에서 기술도 많이 배우고 실력도 늘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지. 그래서 당시 이름을 날리던 대목장 밑으로 들어갔어.

그렇다고 따로 수업 시간이 있어서 배울 수 있었던 건 아니야. 모든 것은 작업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깨우쳐야 했어. 일터에서 목수의 우두머리가 하는 일을 눈여겨보고 알아서 눈치껏 배웠지.

새로운 스승 밑에서 전흥수는 기초적인 일부터 새로 했어. 나무를 곱게 밀어 깎는 대패질, 나무를 깎아 다듬는 자귀질, 기둥을 맞춰 세우는 일 같은 걸 차근차근 해냈지. 그러던 중 목수 우두머리가 전흥수를 따로 불렀어.

“보명사라는 절에서 대웅전을 지어 달라고 하네. 자네가 맡아서 지어 보게나.” 이 말은 전흥수가 대목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인정한 거야. 그때 전흥수의 나이 31살이었어. 다른 사람들이 15년 걸리는 일을 10년 만에 해낸 때였지. 그 뒤로 전흥수는 나무를 맞추고, 잇고, 붙이는 등 수많은 목조 건물을 짓고 고치는 일을 제대로 해냈어. 천년을 이어 갈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을 한 거야.

대목장 VS 소목장

대목장이 있으면 소목장도 있을까? 있어. 대목장이 궁궐, 절, 한옥처럼 큰 목조 건물에서 전체적인 일을 이끄는

장인이라면 소목장은 나무 작업 중에서 작고 세밀한 걸 만드는 장인이야. 그러니까 소목은 문짝이나 창호, 계단, 난간, 가구 같은 걸 만드는 거야. 같은 나무를 다루고 있지만 서로 일하는 분야가 다른 거지.

대목이란 말은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많이 썼어. 원래 대목이 집 짓는 일을 뜻하지만, ‘대목의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기도 했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도편수라는 말을 더 많이 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