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래동화] 한봉이와 보덕이
내금강 법기봉 중턱에 보덕암이라는 절이 있다. 보덕암 맨 아래층의 뒷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벽 한가

운데 높이 2미터, 넓이 1.6미터, 깊이 5.3미터나 되는 굴이 있다. 이 굴에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 온다.

한봉이라는 소년이 큰 뜻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한봉은 산속에 초막을 짓고 글공부를 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유부이면 불이라…아함.”

공부를 하던 한봉이 크게 하품을 했다. 졸음이 몰려와 뒤로 벌렁 누웠다. 초막 안에 천장에 닿을 만큼 책들이 높이 쌓여 있었다. 금강산에 들어올 때 어머니가 지워 준 책이었다.

‘10년 동안 책을 다 읽으라고 하셨지. 이제 겨우 3년인데, 언제 10년이 된담.’

한봉은 잠을 쫓으려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높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가고 있었다.

‘구름은 얼마나 좋을까. 나처럼 갑갑하지 않고.’ 머리 위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맴맴맴.”

‘매미는 글을 읽지 않았어도 노래만 잘하는구나.’

매미가 부러웠다. 한봉은 공부고 뭐고 집어치우고 당장 어머니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

으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안 돼.’

답답한 마음에 한봉은 만폭동 골짜기로 내려갔다. 한참 골짜기 아래로 가고 있을 때였다. 아래쪽에서 웬 소녀가 올라오고 있었다. 한봉은 걸음을 멈추었다. 가까이 다가온 소녀는 한봉을 보고 활짝 웃었다.

“네가 한봉이니? 난 보덕이야.”

소녀는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이 꽃 너 가져.”

보덕은 풀꽃다발을 건네주고 골짜기 위로 올라갔다. 한봉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잠깐만!”

한봉은 정신을 차리고 보덕을 따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려.”

한봉은 헉헉거리며 골짜기 위로 올라갔다. 얼마쯤 가자 개울가 나뭇가지에 흰 수건이 걸려 있었다. 한봉은 발소

리를 죽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보덕은 개울가에서 얼굴을 씻고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보덕은 조용히 한봉을 올려다보고,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수건을 내려 얼굴을 닦았다. 보덕은 다시 골짜기 위로 올라갔다.

“보덕아, 보덕아!”

한봉은 다시 보덕을 부르며 쫓아갔다. 그런데 한 굽이 돌아서자 어디론지 사라졌다.

“어, 어디로 갔지?”

한봉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 저기….”

법기봉 중턱에 있는 나무 가지에 흰 수건이 보였다. 조심조심 벼랑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법기봉에 올라가

니 굴이 하나 있었다. 굴속을 살펴보았다.

“보덕아, 보덕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굴속에 커다란 돌 책상이 있었다. 한봉은 돌 책상 앞에 앉아 보았다. 그때 굴 안쪽에서

보덕이 나타났다.

“잘 왔어. 이 책상 임자가 바로 너야. 이거 받아.”

보덕은 손에 든 금빛 나는 책을 내밀었다. 표지에 <천 리 만 리 꿰뚫어 보기>라고 쓰인 책이었다. 한봉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구나.”

‘천 리 만 리 꿰뚫어 본다’는데 그깟 책들 읽어 무슨 소용 있으랴 생각한 것이다. 한봉은 기쁜 마음에 책장을 펴 보았다. 순간 한봉은 눈앞이 깜깜했다. 책에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아는 글자가 한 자도 없었다.

“이게 무슨 글자야? 이건 책이 아니지.”

한봉은 보덕이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아냐. 그건 글자야. 네가 꼭 배워야 할 책이라고.”

보덕이 힘주어 말했다.

“넌 누구니?”

“너처럼 금강산에 들어와 공부하는 사람이야.”

보덕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이 책을 왜 나한테 주는 거지. 이상한 글자만 잔뜩 있는 책을?”

“난 날마다 네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 그런데 요즘 네가 게을러진 거 같았어.”

보덕은 한봉을 굴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한봉이보다 더 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

“난 이 책들을 만 번도 더 읽었어. 그랬더니 이 금빛 나는 책에 쓰인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어.”

보덕의 말에 한봉은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한봉은 초막에 있는 책을 한 번씩도 다 읽지 않았다. 한봉은 잠시나마 책을 멀리하고 다른 생각을 한 것이 부끄러웠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이제부터 어머니가 보내 준 책을 다 읽기 전에는 절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한봉은 바로 초막으로 돌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 후 한봉은 훌륭한 학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한봉은 자신의 잘못을 일깨워 준 보덕을 위해 절을 짓고 ‘보덕암’이라고 이름 지었다. 보덕이 공부하던 굴은 ‘보덕굴’이라고 하였다.

/자료 제공-‘북한 전래동화(이상배 글ㆍ백명식 글ㆍ좋은꿈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