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래동화] 아름드리 기장나무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다. 봄이 되어 농부는 밭을 갈고 기장 씨를 뿌렸다. 다른 농부들도 기장 씨를 뿌렸다.

“올해도 기장 농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며칠 후, 농부는 그만 병이 나 눕고 말았다. 기장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다른 농부들은 밭에 김을 맸다.

“기장밭 김을 매 주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농부는 앓아누워서 김도 매지 못했다.

여름이 되었다. 다른 농부들은 두벌김을 매고, 세 번까지 매었다.

“후유, 밭에 풀이 얼마나 무성할까.” 농부는 누워서 애만 태웠다.

얼마 후, 농부는 병이 차츰 나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호미를 들고 밭으로 달려갔다. 생각한 대로

밭은 밭인데 밭이 아니었다. 쑥, 바랭이 같은 잡풀이 한껏 자라 무성한 풀밭이 되어 있었다.

“올 기장 농사는 망쳤구나.”

농부는 무성한 풀을 헤쳐 보았다. 기장이 한 포기라도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한참 풀을 헤쳐 살

피던 농부는 기장 한 포기를 발견했다. 농부는 헛웃음이 나왔다. 한 포기 남은 기장이라도 김을 매 주어야 할지, 그냥 둬야 할지 망설였다. 그때였다.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밭둑으로 걸어왔다.

“농부는 밭에서 뭐 하고 있소?”

“예, 기장 씨를 뿌리고 병이 나 누워 있던 사이에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기장은 한 포기밖에 자라지 않았지 뭡니까. 김을 매 줘야 할지, 그냥 둬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포기라도 버려두면 안 되지요. 여러 번 김을 맨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오. 한 포기면 어떻소. 혹시 누가 아오. 한 포기 기장이 자라서 아름드리 기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노인은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노인 말대로 한 포기라도 김을 매 주자.”

농부는 풀을 뽑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이 부르트고, 허리와 팔다리가 쑤시도록 김을 매었다. 마

침내 밭의 맨몸이 드러나자 넓은 밭에 기장 한 포기만 달랑 자라 있었다.

“이 한 포기가 과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농부는 그동안 못 준 거름을 듬뿍 주고 물도 길어다 주었다. 가을이 되었다. 기장 농사가 풍년이라고 하였다. 다른 농부들은 기장을 수확하였다. 앓아누웠던 농부는 부끄러워서 밭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달랑 한 포기였던 기장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이 되기 때문이었다. 저녁 무렵, 농부는 낫을 들고 밭에 나갔다.

“저 저건….” 밭둑에 선 농부는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밭 가운데에 기장이 아름드리나무처럼 우뚝 자라 있는 게 아닌가. 사방으로 가지를 죽죽 뻗고, 가지에 이삭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허허, 하하하하.” 농부는 신기해서 웃고, 좋아서 웃었다.

그때 밭머리에서 수염이 하얀 노인이 다가왔다.

“농부, 뭐가 좋아서 웃고 있소?”

“아니, 지난번에 뵈었던 어르신 아니십니까?”

“그렇소. 기장이 아름드리나무처럼 자랐구먼.”

“예, 어르신 말씀대로 아름드리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높은 데 이삭을 어떻게 따야 할지….”

“걱정할 것 없네. 내가 털어 주지.”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기장나무로 올라갔다.

“자, 이삭을 털겠네.”

노인은 지팡이로 가지를 내리쳤다. 이삭이 우수수 떨어졌다. 잠깐 사이에 이삭이 넓은 밭에 가득 쌓였다.

“그만해도 되겠습니다, 어르신.”

농부가 기장나무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런데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말 이상한 노인이군?” 농부는 기장 이삭을 거두어 곳간에 쌓았다.

“이만하면 3년은 먹고도 남겠구나.”

겨울이 되었다. 농부들은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였다. 새끼를 꼬고, 가마니도 짜고, 내년 농사 준비를 하

였다. 그런데 부자가 된 농부는 먹고 놀았다. 봄이 되었다. 농부들은 밭을 갈고 기장 씨를 뿌리느라 바빴다. 그런데 부자가 된 농부는 남보다 늦게 대충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농부들은 부지런히 애벌김, 두벌김을 매었다.

“쯧쯧, 무엇 때문에 저리 땀을 흘리며 힘들게 농사를 짓나. 부자가 되려면 나처럼 복이 굴러 들어와야 되지.”

농부는 호미를 가지고 기장밭에 나갔다. 작년처럼 무성한 잡풀 속에 기장 한 포기가 자랐다.

“많으면 뭐 해. 한 포기라도 아름드리로 자라면 되는걸.” 밭둑에서 어정거리고 있는데 수염이 하얀 노인이 나타났다.

“농부는 밭둑에서 뭐 하고 있소?”

“잡풀 속에 있는 기장 한 포기를 김매 주려고요.”

“한 포기면 어떻소. 혹시 누가 아오. 한 포기 기장이 자라서 아름드리나무가 될지.”

노인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대충 매 주고 쉬자.” 농부는 기장 주위만 풀을 뽑고 호미로 몇 번 흙을 일구어 주었다.

“올해는 세 아름 기장나무가 자라면 좋겠군.”

가을이 되었다. 농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밭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대로 세 앎이나 되는 기장나무에

이삭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농부는 얼씨구 좋다 하고 춤을 추었다.

“이제 노인이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점심때가 되어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장, 어서 오시오. 그런데 왜 이제 나타나는 거요?”

“나를 기다렸소?”

“목 빠지게 기다렸지요. 기장 이삭을 털어 주어야지요. 그런데 저걸 다 털어 갈 수 있을까요?”

“다 여문 곡식을 왜 못 털어 가겠소.”

“그럼 빨리 털어 주시오.” 노인은 지팡이를 가지고 기장나무로 올라갔다.

“이삭을 털겠네.” 노인은 지팡이로 기장 가지를 털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이삭이 밭 가득 쌓였다.

“그만하면 되었소?”

“아직 반도 안 털었어요. 더 털어 주세요.” 노인은 다시 털기 시작했다. 이삭이 농부 허리까지 차올랐다.

“이제 되었소?”

“아니요.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 주세요.” 농부는 이삭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그런데 노인이 온데간데없어졌다.

“또 사라졌네.”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다음 날 아침, 농부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올해도 힘들이지 않고 기장 한 포기로 대풍년입니다. 우리 마을 사람 전체가 며칠 동안 날라도 못 나를

만큼 이삭이 쌓여 있어요. 그러니 오늘부터 우리 기장 이삭을 날라다 주시오. 품삯은 비싸게 쳐 주겠소.”

농부는 품삯을 미리 계산해 주었다. 마을에서 일할 만한 사람은 모두 달구지를 끌고 지게를 지고 나섰다. 노인들과 아이들도 구경하자고 따라 나섰다. 농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앞장서 걸었다. 이윽고 밭둑에 다다랐다.

“저 밭 좀 보세요. 기장이 산더미처럼 쌓였지요.” 농부가 기장밭을 가리켰다.

어, 그런데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기장이라니? 농부는 두 눈을 마구 비볐다.

“이상하다. 이게 꿈인가?” 그때 뒤에서 한 농부가 소리쳤다.

“뭐야, 저건 모래 더미잖아.” 어제는 분명히 기장 이삭이었는데, 지금은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농부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쯧쯧, 그냥 생기는 열매가 어디 있나.”

“암, 땀 흘리지 않고는 낟알을 거둘 수 없지.”

사람들은 농부의 꼴을 보고 모두 웃었다.

/자료 제공-‘북한 전래동화(이상배 글ㆍ백명식 글ㆍ좋은꿈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