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인물] 조선 말 판소리 명창 송만갑(宋萬甲)


문화관광부는 조선 말 판소리 명창 송만갑(宋萬甲ㆍ1866년~1939년)을 '12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독자적인 창법으로 판소리 예술의 새 경지를 개척했고, '조선 성악 연구회'를 세워 판소리와 창극의 발전에 이바지했던 그의 삶을 살펴본다.

송만갑은 조선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약한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다. 그는 조선 후기 판소리 대가인 증조부 송흥록의 후예로 할아버지 송광록, 아버지 송우룡 등 동편제 소리를 부르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전남 순천 낙안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 송광록은 서너 살 된 송만갑을 포대기에 감싸 안고 다니며 소리를 가르쳤다. 아버지 송우룡도 아들을 가르쳤는데, 슬픈 대목의 표현이 어설프자 소리가 될 때까지 심한 매질을 하며 엄격한 훈련을 시켰다.

송만갑은 한때 구례 은천사에서 소리 공부를 했는데, 쉬지 않고 질러 대는 연습 소리에 진력이 난 승려들이 그의 공부방을 뒤엎은 일도 있었다. 폭포 아래서 부르는 자신의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소리꾼으로 활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일찍이 '소년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던 송만갑은 17 세 무렵에 지역 민속 축제인 '대사습놀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리꾼으로 활약하기 시작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불렀다.

1894년 충정공 민영환을 따라 중국ㆍ미국 등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36 세 되던 해(1902년) 서울에 올라와 임금 앞에서 '어전 광대'의 영예를 누렸다. 20세기 초반에 새로 등장한 극장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고, 음반 취입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 무렵 최고의 판소리 예술을 청중들에게 전해 줬다.

1934년에는 뜻을 같이하는 명창들과 함께 소리꾼들을 모아 '조선 성악 연구회'를 만들어 창극과 판소리 공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송만갑은 이 단체의 교육부장을 맡아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1930년대 후반기부터는 이동백과 함께 창극 춘향전ㆍ흥보전ㆍ심청전ㆍ숙영낭자전 등의 지휘를 맡았다.

송만갑은 판소리의 명문, 그 중에서도 동편제 소리의 전통인 송흥록 집안의 소리 맥을 이어 가리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소리 세계를 다지는 과정에서 과감히 가문의 전통에서 벗어났다.

'청중과 교감할 수 있는 소리가 진정한 예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결단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집안에서는 물론, 동편제 소리를 중시하는 선후배, 동료 소리꾼들도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송만갑은 이렇게 설명했다.

"옷감을 사려는 사람이 비단을 찾으면 비단을 팔고, 광목을 원하면 광목을 팔듯이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를 불러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송만갑은 이러한 '눈높이 소리 철학'으로 남다른 음악 세계를 이뤘다.

그는 또 1913년부터 1935년까지 4 차례에 걸쳐 유성기(留聲器) 음반 87 면에 단가와 판소리 다섯 마당을 고루 녹음해 귀중한 유산으로 남겼다.

'동편제'ㆍ'서편제'란?

ㆍ동편제 : 판소리에서, 조선 말기의 명창 송흥록의 법제에 따라 부르는 창법의 한 갈래. 웅대하고 힘차며, 맑고 깨끗함. 본디 운봉ㆍ구례ㆍ순천 등 섬진강 동쪽에서 널리 불려져 동편제라 함.

ㆍ서편제 : 판소리에서, 조선 말기의 명창 박유전의 법제에 따라 부르는 창법의 한 갈래.

본디 보성ㆍ광주ㆍ나주 등 섬진강 서쪽에서 성했음. 음색이 곱고 애절함.

ㆍ판소리 : 광대 한 사람이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서사적인 사설(辭說)을 노래와 말과 몸짓을 섞어 창극조로 부르는 민속 예술의 한 갈래.

ㆍ명창 : 노래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

ㆍ창극 : 판소리와 창을 중심으로 극적인 대화로 이뤄진 우리 전통 연극.

김병규 기자 byung@hk.co.kr

입력시간 : 2003-06-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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