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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의 흔적을 찾아서] 장영실
과학 문명국 기틀 세운 조선의 에디슨

지난 3월 23일은 세계 기상의 날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조선 시대 초기부터 기상 관측을 시작한 과학 문명 국가입니다. 세종 23년(1441년)에 측우기가 만들어졌는데, 이탈리아의 카스텔이라는 과학자가 1639년에 발명한 서양 측우기보다 무려 200 년이 앞섰지요. 이 측우기를 만든 장영실은 천한 노비 출신으로 우리 나라의 과학 문명을 크게 끌어올린 측우기, 물시계, 혼천의 등 수많은 기구들을 발명했습니다.

1. 수표교. 장마철에 물의 깊이를 재며 다리 역할까지 했다. 원래는 청계천에 있었으나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 다리 기둥에 물이 불어 나고 줄어드는 양을 나타내는 눈금이 새겨져 있다.
2. 측우기(보물 제561호). 세종 23년(1441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동제 우량계이다. 위 측우기는 헌종 3년(1837년)에 제작돼 유일하게 남아 있는 측우기이다. 화강석 받침대(측우대)는 영조 46년(1770년)에 제작된 것이다.
3. 간의.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와 함께 조선 시대 천문대에 설치했던 가장 중요한 천문 관측 기기이다.
4. 장영실

◈ 세종의 부름을 받다

1421년 가을이었어요. 부산 동래에서 노비로 살던 장영실은 세종 대왕의 부름을 받고는 걸어서 20여 일 만에 궁궐에 도착했어요.

“네가 고장 난 무기를 잘 고친다는 장영실이더냐?”

“예, 그… 그러하옵니다.”

“네가 열여섯 살 때에 저수지의 물을 끌어들여 가뭄을 해결했더냐?”

“예, 그러하옵니다.”

세종 대왕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장영실은 세종 대왕과 마주한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영실이 농기구나 무기를 잘 만들고 천문학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는 소문을 듣고는 세종 대왕이 그를 궁궐로 부른 것입니다.

“우리 백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이제부터는 궁궐에 머물며 일을 하도록 하라!”

장영실은 세종 대왕의 명에 그저 감복해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펑펑 쏟았습니다.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관에서 일하는 기생이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그도 관노가 됐던 것입니다. 관노란 관에서 부리는 노비 즉 하인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의 노비들은 천한 신분이어서 물건처럼 사거나 팔렸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임금께서 직접 천한 신분인 장영실을 만나기까지 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장영실은 정말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자신처럼 낮은 천민을 무시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라는 세종 대왕을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세종 대왕은 사람의 신분이 낮고 높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실력에 따라 사람을 인정하는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세종 대왕은 과학자들을 많이 뽑아 곁에 두고 발명품을 제작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천문학자들을 중국으로 보낼 때에 장영실도 함께 보내 천문학에 관계된 책을 사오도록 했습니다. 장영실은 학자들과 함께 중국에 머물며 1 년 정도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노비의 신분으로 말이에요.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세종 대왕은 장영실을 불러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고 상의원의 별좌라는 벼슬을 내렸습니다. 이 때부터 장영실은 끊임없이 발명품을 만들어 세종 대왕께 바쳐 발명의 천재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영실의 공이 인정되니 그를 정5품의 행사직에 임명하라!”

1432년, 세종 대왕은 천문과 기상 관측을 하기 위해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조선 시대의 천문 관측대)를 설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장영실과 이천은 여러 학자들이 내세운 이론에 따라 1433년에 간의대를 완성했습니다. 두 사람은 간의를 구리로 만들어 가며 계속 실험해 천체의 운행과 현황을 알아 볼 수 있는 ‘혼천의’를 만들어 우주를 관측할 수 있게 했습니다. 1434년에는 이천과 함께 구리를 부어 무려 20여만 자나 되는 인쇄 글자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갑인년 세종 16년에 제작했다 해 ‘갑인자’라고 부릅니다.

이 밖에도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자격루와 옥루, 스스로 움직여서 시간을 알려 주는 자동 물시계,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최초의 공중 시계인 앙부일구, 바람의 세기를 측정하는 풍기대, 일 년이 정확히 몇 일인가와 24 절기를 알아 내기 위해 사용됐던 ‘규포’, 보물 제561호인 측우기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 장영실 연보
?년 : 동래현의 관노로 태어남.
1423년 : 어명으로 상의원 별좌가 됨.
1432년 :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간의대를 제작함.
1433년 : 혼천의 완성.
1434년 : 금속 활자 갑인자를 만듦. 자격루를 발명함.
1438년 : 6 년 동안 천체 관측용 대ㆍ소간의,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고정된 정남일구, 앙부일구, 주야 겸용의 일성정시의,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의 옥루를 제작 완성함. 경상도 채방 별감의 지위로 구리, 철을 채광해 제련함.
1441년 :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 그 공으로 상호군에 특진됨.
1442년 : 설계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져 불경 죄로 곤장을 맞고 파직 당함.
그 이후 궁에서 쫓겨나 언제 어느 때에 죽었는지 기록이 없음.

측우기는 세종 23년(1441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동제 우량계입니다. 장영실은 장독 뚜껑에 괸 빗물을 보고 측우기를 창안했습니다. 세종이 임금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풍년이 많이 들었는데, 이 모두가 측우기와 수표 덕분이었습니다. 수표는 장마 때에 물이 불어 나는 것을 재는 기구입니다.

장영실은 또 세종의 어명에 따라 수표교를 만들어 청계천에 세웠습니다. 청계천 복개 공사를 할 때에 장충단공원으로 옮겼습니다. 최근 청계천 복원 공사를 하면 다시 제자리에 옮겨와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수표교는 다리 역할도 하면서 장마 때에는 비가 얼마나 왔는지 알아 볼 수 있도록 눈금을 새겼습니다. 또한 긴 돌에 눈금을 새겨 강물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수표도 만들었습니다. 수표 또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었습니다.

◈ 궁에서 쫓겨나다

세종 대왕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온천을 자주 찾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마를 자주 사용했는데, 편안한 가마를 만들라는 어명을 장영실에게 내렸습니다. 장영실은 크고 넓은 가마를 만들어 세종 대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세종 대왕을 태운 가마가 그만 부서져 세종 대왕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기록에 의하면 장영실은 곤장 100 대의 형이 떨어졌으나 세종 대왕의 명에 의해 곤장 80 대로 낮추어져 벌을 받은 다음 궁에서 나갔다고 돼 있습니다. 궁에 들어와 과학 연구에 몰두한지 20 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세종 대왕은 장영실을 곁에 두고 싶어했지만 궁에도 법도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늘 같은 임금을 가마에서 떨어뜨린 불경 죄를 덮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장영실은 궁에서 ?겨난 후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과학 기구들을 통해 장영실은 위대한 과학자로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입력시간 : 2004-04-0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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