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 기행] <36> 고구려는 살아 있습니다
부흥 의지 계속 이어져 발해·고려로 부활
"우리가 역사를 옳게 계승하고자 할 때
고구려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고구려 역사 기행을 마칠 시간이 되었군요. 지금까지 고구려사의 중요한 흐름과 고구려의 여러 특징 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고구려의 멸망 이야기를 쓰고 나니 못내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구려가 당과 신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고구려는 완전히 사라지고 잊혀진 것일까요?

▲ 668년 멸망 후 고구려 부흥을 위한 전쟁 시작

최근에 발굴된 아차산 홍련봉 1보루.

고구려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당나라에 끌려가고, 일부는 신라인이 되었습니다. 또 전쟁을 피해 일부는 돌궐과 일본 등지로 이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옛 땅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고구려를 세울 준비를 했습니다. 668년 고구려가 공식적으로 멸망은 했지만, 신성ㆍ요동성ㆍ안시성ㆍ북부여성 등 고구려 대부분의 성들은 여전히 당과 신라 연합군이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이 성들을 중심으로 고구려 부흥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669년 당나라 장군 이적이 당 고종에게 “압록강 이북에서 아직 항복하지 않은 성은 11 개 성이며, 도망간 성도 7 개나 됩니다. 당군이 공격하여 빼앗은 성은 3 개에 불과하며, 항복해 온 성은 11 개 성입니다.”라고 보고했을 정도로 고구려의 땅에는 당군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제대로 지배할 힘이 없었고, 그저 자신들을 위협하는 강한 세력을 제거하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전역을 통치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고구려인의 완강한 투쟁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의 동부 지역에는 전혀 나아가지 못했고, 겨우 요동에서 평야에 이르는 정도만을 점령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 당을 몰아내기 위해 신라와도 손잡아

홍련봉 1보루에서 출토된 연화문 와당. 이 유물에서 보듯 남한 지역에도 고구려의 숨결이 많이 남아 있다. 이제 고구려를 말로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들부터 먼저 아끼고 잘 보존 관리해야 한다.

남의 지배를 받기 싫어한 고구려인들은 당의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때로는 신라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670년 3월 고연무가 이끄는 1만 명의 고구려 부흥군은 신라 설오유가 이끄는 1만 군대와 연합해 압록강 건너 옥골에서 당나라군을 크게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또 검모잠은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을 모셔다가 고구려 부흥군의 왕으로 삼고,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큰 세력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당나라는 대군을 파견하여 고구려 부흥군을 공격했습니다.

게다가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는 사건 등이 생기고, 안승이 신라에 의지하는 등 고구려 부흥군은 점차 약해졌습니다. 672년 백수성 전투, 674년 호로하 전투 등에서 당군과 맞붙었던 고구려 부흥군은 끝내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인의 강력한 투쟁 탓에 당나라는 겨우 요동성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요동 지역만을 장악했습니다. 당은 요동을 다스리기 위해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을 요동주도독 겸 조선왕으로 삼아 이 곳에 파견했습니다.

그렇지만 보장왕은 당나라의 꼭두각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고구려 사람들의 힘을 모으며 4 년 간 치밀하게 고구려를 세울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고구려의 자존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보장왕의 계획은 681년에 당나라에게 발각되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발해ㆍ고려 등 고구려의 계승 노력 이어져

고구려의 부흥 의지는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698년 당나라에 끌려갔던 유민들이 탈출하여 다시 고구려 옛 터로 돌아왔고, 이들의 지도자였던 대조영이 마침내 고구려를 계승하는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발해의 왕들은 스스로 고구려왕이라고 하였으며, 고구려의 옛 터를 대부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망했지만, 이처럼 끝없는 생명력으로 부활했습니다.

고구려를 계승했던 발해로 부활했고, 고구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고려로 부활했습니다. 고려의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워 고려를 공격해 온 거란 군대를 되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은 고구려를 선조의 역사로 높이 받들어 해마다 고구려 시조왕과 영양왕과 을지문덕 등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명나라도 조선이 고구려의 후계자인 만큼, 늘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는 이후에도 우리 겨레의 정신 속에 뿌리 깊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고구려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그 역사를 옳게 계승하고자 할 때 고구려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중국인들이 억지로 고구려사를 자기 나라의 역사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중국의 역대 사서에는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라고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단지 영토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억지로 고구려를 자기 역사라고 주장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고구려를 영원히 살아 있는 역사로 만들려면,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도 고구려를 더 사랑하며, 제대로 알고, 이를 계승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고구려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쉴 것입니다. <끝>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4-12-23 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