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 '팔만대장경', 770년이 지났는데 그대로?

서원극 기자 wkseo@snhk.co.kr
편집=이경진 기자
경남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이 19일부터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탐방객들은 장경판전 중 법보전 안에서 팔만대장경판을 만나볼 수 있다. 해인사 누리집(www.haeinsa.or.kr)을 통해 탐방 신청이 가능하다. 일반 공개를 기념해 팔만대장경의 비밀을 풀어본다.

△팔만대장경은 어떤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의 정식 이름은 ‘해인사 대장경판(大藏經板ㆍ국보 제32호이자 세계기록유산)’이다. 대장경을 새긴 목판(경판)의 수가 8만여 장(정확히는 8만 1258장)이고, 8만 4000가지 마음의 괴롭힘을 이겨낼 수 있는 가르침을 담았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부른다. 고려 고종때인 1236~1251년에 걸쳐 제작돼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놓은 불교 경전을 말한다. 이 대장경판이 보관된 건축물이‘장경판전(국보 제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장경판전은 남북으로 ‘수다라장’과 ‘법보전’, 동서로 ‘동사간전’과 ‘서사간전’ 4동의 건물이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대장경판이 보관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1년은 고려대장경이 만들기 시작한지 1000년이 되는 해였다. 1011년 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해 1087년 초조대장경이 완성됐다.

하지만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 이후 부처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키겠다는 바람을 담아 대장도감을 설치해 1251년 완성됐다. 두 번째 만들었다고 하여 ‘재조(再造)대장경’이라고 한다. 강화에서 보관하다가 1398년 5월에 해인사로 옮겨졌다.

△장경판전 설계와 보존의 비밀

고려대장경은 완성된지 770년이 지났지만 8만 개가 넘는 경판 중 부식된 것은 한 장도 없다. 이유가 뭘까?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도 가장 위쪽, 서남향 양지바른 곳(해발 700m)에 위치해 있다. 경판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인 나무는 산벚나무다.

이어 돌배나무와 거제수나무 등 3종이 80%를 넘는다. 이들 나무는 잘 썩지 않고 조직이 치밀해 경판재로는 최고다. 그리고 글자를 새기기에 앞서 2년 정도 바닷물에 담갔다. 그 뒤 소금물에 삶아 1년 정도 잘 말린 다음 옻칠을 했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

고려의 장인들은 뒤틀림이나 굽음 등을 방지하기 위해 경판 양쪽에 나무로 마구리를 끼워 넣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러고도 안심을 못해 마구리와 경판을 금속 장석으로 연결했다. 대장경 보존 비밀의 핵심은 나무가 아닌 판전에 숨어 있다. 장경판전은 앞뒤 벽의 위아래로 창문을 냈다. 그런데 앞쪽 벽은 아래 창이 위 창보다 약 4배 크고, 뒷벽은 위 창이 아래 창보다 크다. 큰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내부에서 고르게 퍼진 뒤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다.

건물 바깥벽에 설치한 붙박이 살창도 판전 안의 공기 흐름을 배려한 설계다. 또 모래ㆍ횟가루ㆍ찰흙ㆍ숯ㆍ소금을 섞은 흙으로 바닥을 만들었다. 습도를 조절하고 벌레가 경판을 갉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더해 경판에 붙은 마구리 덕분에 경판과 경판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면 길죽한 직사각형 공간이 있다. 이 틈새가 일종의 굴뚝 효과를 내 경판 표면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팔만대장경의 기록들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목판은 정확히 8만 1258판이다. 경판의 한 면은 한 줄 14자 총 22~23줄로 이뤄져 있으며 경판 한 면에 새긴 글자 수는 322자, 양면을 합해 644자다. 여기에 전체 경판수(8만 1258매)를 곱하면 글자 수는 어림잡아 5233만 152자에 이른다.

경판 한 장의 평균 두께는 4cm. 이를 한 장씩 차곡차곡 쌓으면 높이가 3250m에 이른다. 이는 백두산의 2744m보다 506m 더 높다. 대장경판 1장의 무게는 3~4kg이다. 따라서 경판의 총 무게는 280여 t에 달한다. 경판 무게만으로 이동을 가정할 경우 2.5t 트럭 112대 분량, 쌀 3만여 가마니다.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데는 당시 고려 인구의 1/6인 연인원 50만 명이 동원됐다. 나무벌채 및 재료운반 등을 합한 숫자다. 그중 경판 판각에 1800여 명이 참여했다. 조선 시대의 명필가 추사 김정희는 “이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글자수가 5200만 자나 되지만 오ㆍ탈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장경판전의 기둥은 수다라장과 법보전이 각각 48개, 동서 간판고가 각각 6개로 모두 108개다. 108이라는 숫자는 장경판전 건물의 기능은 물론 불교 교리를 마음에 담은 선조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